[북데일리] <분단아, 고맙다>(i&R. 2013)는 시인 신동호가 서울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시를 쓰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헌데, 제목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5천만 우리 국민의 염원이 어서 빨리 남북이 통일되는 것인데, 어찌 분단 상황이 고맙단 말인가.
저자는 ‘바르샤바 유로 2012’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축구를 예로 들며 이 말의 배경을 설명한다. 당시 풋볼리스트 서형욱은 두 나라의 축구를 “훗날 축구사가 당대 축구의 경계선으로 지목할 중대한 역사적 현장”을 보여주었다며 그들의 진화하는 자세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스페인은 8세기부터 이슬람의 통치시기를 거쳐 15세기에야 완전한 독립국을 이뤘다. 1936년에는 내전으로 수많은 학살을 경험했다. 바로셀로나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지였고, 레알마드리드로 유명한 마드리드도 종교 재판으로 인한 피의 도시였다는 것. 그러나 내전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미로의 ‘추수’를 낳았고, 광기의 현장이었던 플라사 마요르 광장은 <돈키호테>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의 분열 시기는 길었다. 16세기에는 외국 세력의 싸움터였고, 1861년 왕정으로 통일국가를 이룬 후에도 20년간 남부와 북부간의 분열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고양되어, 베르디와 푸치니가 그 역사를 함께했고, 서양 지성을 이끄는 <장미의 이름>의 에코나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창시자인 로셀리니가 배출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치고 받는 오늘의 한반도 역시 참으로 생동하는 역사의 현장’일 수 있다며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다행히도 인류사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 ‘평화’가 있다. 21세기 분쟁을 상징하는 한반도에서 평화가 완성된다면, (중략) 강대국의 각축장이며 온갖 사상이 난무하는 현장이고 상대방의 마음에 갖은 비수를 다 겨누어보았으니, 이곳에서 이뤄진 평화는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평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과 예술이 미래 지구사회의 지성을 이끌어갈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때라면 우리도 인류사에 진 빚을 갚고도 남는다.
분단은 찬란한 선물이다. 평화를 실험하고 완성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평화가 오면 한국의 동네축구가 창의력을 발휘하여 배흘림기둥 같은 아름다운 패스를 날릴 것이다. 우리 축구를 보고자 세계가 잠을 설치는 건, 분단을 평화로 극복한 민족에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p177~p178)
지금은 분단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불안해하고 있지만 우리가 힘들게 얻은 평화는 무엇보다 값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남북 사이에 자주, 많이 나누고, 추위 속에서 서로를 필요로 했던 ‘야생의 사고’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통의 공감만으로도 남북관계는 따뜻해질 것이란 생각이다.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쓴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쓴 것 처럼 ‘좀 어설프고 시원함이 부족’한 듯도 하다. 중복되는 내용도 눈에 많이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남북 분단과 통일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시인처럼 우리가 지금의 삶을 더 냉철하게 고민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통일은 훨씬 더 빨리 우리 앞에 다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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