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피플>시를 읽어주는 남자…양현근 금감원 국장
‘그들만의 성지/남자화장실 벽에 붙어 오줌발 참선 중인데/한 발 앞으로! 가까이 오세요!/당신의 총은 장총이 아닙니다!/소변기 위에 붙은 귀한 당부말씀을 듣는다/저게 진리다/성경보다 법구경보다 힘이 세다’ (시인 양현근의 ‘오줌발 참선’ 중에서)

대한민국 금융계를 벌벌 떨게 하는 금융감독원. 차가운 머리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냉혈한만 모였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뻣뻣한 숫자와 싸우지만 가슴 한켠에는 늘 온기가 남아있다.

“금융감독 업무를 할 때도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18개 시중은행을 감독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총괄하는 양현근 은행감독국장이 네번째 시집 ‘기다림 근처’를 출간했다. 지난 3년간 집필한 시 62편이 수록돼 있다.

양 국장은 자타공인하는 ‘중견시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양 국장은 1998년 계간지 ‘창조문학’으로 등단해 ‘수채화로 사는 날’(1998년), ‘안부가 그리운 날’(2003년), ‘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2009년) 등의 시집을 내며 문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 2011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양 국장은 평소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해뒀다가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새벽 시간을 활용해 한꺼번에 수작을 쏟아낸다. 특히 ‘기다림 근처’는 이전보다 어깨에 힘을 많이 뺀 탓에 한달도 안돼 2쇄를 찍었다.

“관념에 머물러 있는 시는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죠. 시는 독자와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양 국장은 고상한 단어로 포장한 표현을 최대한 자제한다. 이번 시집의 인기작 ‘오줌발 참선’이 대표적이다. 실생활에서 모티브를 찾고 평소 쓰는 단어를 채워 넣어 인간미를 더했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리운 통증’은 양 국장의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양 국장에게 시는 ‘힐링(healingㆍ치유)’이다. “문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됩니다. 자기 치유가 되는 거죠.”

최근에는 A교도소 장기수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복역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데 좀 더 배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장기수는 양 국장을 통해 시를 접한 뒤 늘 불안했던 자신을 많이 다스릴 수 있었다고 했다. ‘시 치료’ 효과다.

양 국장은 국내 최대 문학 커뮤니티인 ‘시마을(http://feelpoem.com)’ 촌장이다. 비영리 문학단체로 지난 2001년 11월 개설한 뒤 정회원 20만명에 누적 방문자 수만 5000만명에 달한다. 문학계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시마을은 문학 저변 확대와 재능 기부, 나눔 사업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시마을 문학콘서트인 ‘찾아가는 시낭송 행사’가 유명하다. 주로 노인회관과 정신병원, 고아원, 교도소 등 소외계층을 찾아가 시낭송, 시극 등을 공연한다.

주변의 반대도 있지만 양 국장은 문학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시를 쓸 겁니다. 쉽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어요.”

최진성 기자 ipe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