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레트로 펀치’ 낸 크라티아 등
헤비메탈 2세대 속속 컴백
한국 대중음악 다양성 확보
80년대 중반 한국 헤비메탈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밴드 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최근 다양한 음악ㆍ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이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들보다 강렬한 사운드로 무장한 밴드들이 등장해 장르의 다변화를 시도했다. 1988년 컴필레이션 앨범 ‘프라이데이 애프터눈(Friday Afternoon)’은 이른바 ‘헤비메탈 2세대’의 시발점이었다. 블랙신드롬, 아발란쉬, 크라티아, 철장미 등 ‘헤비메탈 2세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이 대거 참여한 이 앨범은 당시 무려 53만장이나 팔렸다.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이들의 음악은 방송으로 내보내기엔 너무 강했고,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못 이긴 대부분의 밴드들이 90년대 초중반 활동을 접었다. 누군가는 음악과 상관없는 직업을 택했고, 누군가는 가수들의 앨범과 공연 세션으로 활동하며 무대의 주변으로 물러났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중년의 아저씨가 된 ‘로큰롤 대디’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헤비메탈 밴드 블랙신드롬이 지난달 16일 서울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송설&파고다’ 공연에서 자신들의 히트곡‘ 피드 더 파워 케이블 인투 미(Feed the Power Cable into Me)’를 열창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
크라티아가 23년 만에 앨범 ‘레트로 펀치(Retro Punch·사진)’를 발매하며 마중물 역할에 나섰다. 크라티아는 본 조비(Bon Jovi), 포이즌(Poison), 도켄(Dokken)으로 대표되는 팝적인 메탈인 LA메탈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선보여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다. 특히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이준일은 뛰어난 연주력으로 당시 ‘한국의 조지 린치(도켄의 기타리스트)’란 찬사를 받았다.
이준일은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단 한 번도 음악의 꿈을 놓은 적이 없다”며 “제로지, 하이톤 등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밴드들도 컴백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앨범엔 가수 홍경민을 비롯해 H2O의 김준원, 이브(EVE)의 김세헌, 블랙신드롬의 박영철, 라디오데이즈의 김용훈, 원(Won)의 손창현, 블랙홀의 주상균, 크래쉬의 윤두병 등 한국 헤비메탈의 대표 뮤지션들이 대거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해 컴백을 도왔다.
지난 12월 16일 크라티아를 비롯해 제로지, 나티 등 ‘헤비메탈 2세대’들이 홍대 롤링홀에 모여 ‘송설&파고다’란 타이틀로 공연을 펼쳤다. 20년 넘게 한국 헤비메탈의 대들보 역할을 해온 블랙홀은 2월 중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탁월한 바로크메탈 속주로 명성을 떨쳤던 기타리스트 이현석도 3월 중 새 앨범으로 돌아온다. 가요계 최정상 세션맨으로 활동해온 작은하늘 출신 기타리스트 이근형, 시나위와 H2O를 거친 드러머 김민기, 베이시스트의 거장 신현권도 SLK란 밴드를 결성해 앨범을 준비 중이다.
헤비메탈 전문지 파라노이드의 송명하 편집장은 “‘헤비메탈 2세대’들은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시대 상황 때문에 안타깝게 묻혔다”며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공백으로 남았던 부분이 다시 채워짐과 동시에 음악의 다양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컴백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