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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표하기 전에 “멈춰라, 생각하라”
[헤럴드경제=남민 기자]이제 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두 명의 대선주자는 닮은 듯 다른 공약을 내걸고 마지막 총력을 다하고 있다. 언론사들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율은 투표함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지지율 차이도 박빙이다.

▲서민보수층? 보수 포퓰리즘?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현상은 바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 속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서민보수’의 존재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는 박 후보는 저소득층, 저학력층, 생활인층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문 후보의 지지층은 학생들과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이를 ‘보수 포퓰리즘’이라 명명하고, 이 현상의 기본 전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도덕적’ 문제의 간극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가난한 농부와 블루칼라 노동자 대 변호사, 은행가, 대기업 등의 경제적 계급 대립이 정직하고 근면한 기독교 노동자 대 외제차를 몰고 낙태와 동성애를 선호하는 자유주의자의 대립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퓰리즘적 보수주의자들의 주된 경제적 요구는 열심히 일하는 국민에게 규제의 재원을 마련하자고 세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국가를 타도하라는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정책은 ‘세금 감소, 규제 완화’다. 

그러나 최근 진보의 록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석학 슬라보예 지젝은 개인의 이익의 합리적 추구라는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은 분명히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적 보수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경제적 파멸에 투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세와 탈규제는 가난한 농민을 파산으로 몰아가는 거대 기업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라는 의미다. 국가 개입이 감소하면 영세농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고, 그밖에 사회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외 이런 ‘계급배반적’ 서민보수층의 부상을 이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만 탓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좌파 혹은 진보진영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식인층, 전문직 근로자 및 고소득층 등 정작 진보의 지지기반이 돼야 하는 서민층과는 거리가 멀다. ‘강남좌파’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자선단체에 몇 푼을 기부하고, 수익금의 1%가 제3세계 어린이들을 도와준다는 스타벅스의 카페라테를 마시며 흐뭇해하며 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며 입으로만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정작 눈 앞에 있는 진짜 서민의 민생은 외면하고 있다. 서민보수는 이념적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에 몰두해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 ‘강남좌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보수로 돌아선 것이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지젝의 당부 “멈추고, 직시하고, 생각하라”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가 힌트가 될 것이다. 지젝은 진보에게 취약하고 모순적인 저항을 잠시 접어두고 멈춰 서서 사유하라고 당부했다. 체제에 대한 저항이 또 다른 저항을 낳아 오히려 체제를 강화(서민보수의 부상)시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기획을 고민해봐야 한다.

서민보수층 역시 자신들의 ‘계급배반적 투표’를 되돌아봐야 한다. 국가가 의료보험료를 인상하고자 하면 보수 기득권층은 전체주의국가가 되려 하냐고, 세금 인상은 경쟁력을 줄이고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며 반대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장려하며 영생을 약속하면서, 의료보장을 위해선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세상은 옳은가?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더 넓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인상하려는 국가의 노력이 공격에 부딪힐 때마다, 뒤에서 대기업들은 기뻐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공적 개입이 사라지면 대다수의 삶을 규제하게 될 익명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급진적인 개인주의가 나서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게 된다”고 지젝은 지적했다.

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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