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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구멍에 빠진 지식인들
현실과 '블루스' 추는 요즘 예술가의 초상
쥐식인?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다. 설마 쥐가 식인(食人)을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 아마 지식인을 풍자했을 터이다. 김다은 작가가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신작을 들고 나왔다. <쥐식인 블루스>(작가.2012). 그녀는 1996년 장편 소설<당신을 닮은 나라Ⅰ,Ⅱ>가 1억 고료 국민문학상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다.

책에 따르면 이번 작품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문제작이라 평가 받은 바 있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꼬집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쥐식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쥐식인이란, 소위 석사 박사 등 가방끈이 긴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쥐식인은 현실의 가장 작은 귀퉁이에, 홀로, 자유와 열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마련한 자들이다. 자신만의 온전한 독립된 세계를 유지해주는 쥐구멍, 그 쥐구멍에 빠진 혹은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쥐식인이다. -6쪽

다시 말해 쥐식인은 예술적 성향을 가진 인간들을 지칭한다. 책은 자신이 추구하는 독립된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삶을 8편의 이야기로 전한다. 첫 번째 단편은 한 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다.

그는 글을 쓴다며 벌써 2년 내내 집에서 글자와 사투를 벌이는 남자다. 어느 날 아침 허기에 눈을 떴지만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 순간 싸한 분위기를 직감했다.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밥과 김치를 구걸하다 죽었다는 뉴스가 안 그래도 그를 마뜩찮게 여겼던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 것. 

“소설이 밥 먹여 주니?” 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결국 숟가락도 들지 못하고 허기진 채 밖으로 나와 친구를 찾아 갔다. 친구의 제안으로 그는 굶어 죽었다던 시나리오 작가 문상을 가게 됐다. 빈속으로 나온 그는 허기를 느끼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밥을 먹지 못한다.

책은 왜 이리 ‘배고픔’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 책에 따르면 이는 바로 디지털 혁명을 이룩한 후기산업사회의 모순적 현실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21세기에 기아에 허덕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가 질문을 던진다. 이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각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예술가의 80%가 한 달에 백만 원 미만의 돈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며, ‘보험을 들려고 했더니 시인은 폐병이나 우울증도 많고 위험직종이니 보험료가 훨씬 비싸서 가입도 할 수 없다’ 등. 어디선가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 마치 자신들의 이견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언론에 이미 나온 것을 입으로 옮겨놓은 것들뿐이었지. 예술가의 열악한 형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들고 나오는 단골메뉴.- 28쪽

책은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조합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책 속에는 한 젊은 작가의 죽음이나 룸살롱, 춤 문화 같은 우리 사회의 '뉴스'들을 소재로 차용했다. 두 번째 단편은 대학 교수들의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탱고나 자이브 등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내려가다 보면 바로 우리 자신, 혹은 우리가 존경하는 지식인의 이야기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밖에 다른 단편들 속에서도 작가의 일면을 투영시킨 대목이 나온다. 이를테면 신조어를 연구하는 김 교수라는 설정이 그렇다.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이라는 책을 펴낸 작가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작품 저변에 깔린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읽는 재미가 있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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