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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자살·강제퇴거·뱅크런… ‘깡통국가’ 처절한 대가
그리스 자살률 전년比 40% 급증
깊은 좌절감에 스스로 폭도되기도



2001년 아르헨티나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냄비 시위’로 얼룩졌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 수십만명이 냄비를 두드리며 폭 140m의 ‘누에베 데 훌리오(독립기념일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2월 23일 사실상 국가부도를 선언하며 국민들에게 긴축을 강요하는 성명을 낸 직후였다.

시민들이 두드린 냄비는 당시 ‘깡통 상태’가 된 아르헨티나와 다를 바 없었다. 외신들은 “이 나라에서 임금을 받는 유일한 직업은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뿐”이라고 전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아무리 해도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슈퍼마켓을 턴 ‘폭도’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한 달 뒤면 나도 약탈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절규했다.

국고와 경제체력이 바닥나 ‘깡통’이 된 나라는 이처럼 사회와 국민들을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아르헨티나의 10여년 전 상황이 이번엔 ‘깡통주택의 나라’가 된 스페인,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육박하는 그리스에서 반복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4년 전부터 부동산 거품이 빠지자 ‘깡통주택(주택가격 폭락으로 집을 팔아도 주택담보대출 상환과 전세금 반환이 불가능한 집)’이 속출했다. 이에 따라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2008년 이후 스페인에서는 총 35 만가구가 퇴거처분을 받았다. 특히 작년에 이런 가구들이 전년보다 22%나 늘었다.

스페인 재정부는 지난 7월 “올 들어 매일 160명이 거리로 나앉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강제퇴거의 충격으로 스스로 목을 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급기야 지난 9일에는 퇴거 명령을 받은 전직 지방의원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에 스페인 은행연합회가 12일(현지시간) 이들의 퇴거를 2년 유예해주겠다고 나섰으나 사람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자살을 반사회적 행위로 여겨 금기시하는 ‘정교회(正敎會)’의 나라 그리스는 나라 곳간이 ‘깡통’으로 변하면서 자살공화국이 됐다.

지난 4월 5일 AP통신은 77세의 은퇴 약사가 그리스 아테네 중심가의 지하철역에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게 된 사연을 전했다.

이 노인은 35년간 연금을 붓고도 입에 풀칠조차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우는 상황이 되기 전에 내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은 자살뿐”이라고 쓴 유서를 남겼다. 5월에는 은퇴한 61세의 가장이 은행 채무와 세금을 못 이겨 목을 매 숨졌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스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독일 슈피겔 등 외신은 “6월 한 달에만 그리스에서 350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이 중 50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2007년 그리스의 자살률은 2%였지만 2011년 경제위기에 접어들며 19% 늘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살증가율도 가파르게 치솟아 지난해 상반기 자살률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40% 증가한 상태다.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도 ‘깡통’이 된 나라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스페인은 작년에만 예금이 6% 줄어든 데 이어 위기설이 고조되던 지난 4월에는 총예금의 1.8%인 31억유로가 인출됐다. 그리스는 지난 2009년 이후 올해 4월까지 은행 예금총액의 30%가 빠져나갔다.

<윤현종ㆍ김현경 기자>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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