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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과 2012년의 단일화, 같거나 다르거나
대선 정국 블랙홀 단일화가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야권은 2002년도의 추억이 10년이 지난 2012년에 다시 현실로 만들어냈다는 축제 분위기에 벌써부터 들떠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2002년도와 2012년의 단일화는 다르다며 공세에 나섰다.

2002년 11월 5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후보에게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제안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회동 개최에 합의한 것과 같은 날이다. 두번 모두 대선을 약 40여 일 남겨둔 시점에서 단일화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셈이다.

그 과정도 10년과 지금이 비교적 유사하다. 10년 전에는 앞서 정 후보가 단일화를 제안했고, 노 후보는 이에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노 후보가 국민경선 단일화를 역제안 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이번에는 무소속 안 후보가 키를 쥐었다. 문 후보는 민주당 경선 시점부터 안 후보를 향해 꾸준히 연대를 제안했고, 또 때로는 야권 원로와 시민단체 등의 입을 빌려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안 후보는 일관된 침묵을 유지하고, 때로는 무시하며 나름대로 지지기반을 확충해왔고, 결국 시점이 무르익어 전격적인 회동을 역제안 했다. 10년 전 노무현을 벤치마킹한 셈이다.

지지율에서 한 발짝 앞선 보수 후보를 향한 야권의 2위와 3위의 단일화란 점도 똑같다. 2002년 11월 경 3자 대결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회창 후보는 2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던 노 후보와 정 후보를 약 15%포인트 가량 앞섰다. 반면 단일화를 전제로 한 1대 1 대결에서는 이 후보와 야권 후보간 격차가 5% 포인트 이내로 좁혀지곤 했다.

3자 대결에서 40% 대 초반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각각 20% 초중반 지지율로 때로는 자리바꿈을 하는 안 후보와 문 후보의 지금 모습과 똑같다. 1대 1 대결에서는 박 후보와 야권 후보의 순위가 종종 뒤바뀌는 점만이 약간의 차이다. 야권이 단일화에 더욱 목매온 것도 이 같은 차이첨 때문이다.

2002년과 2012년 단일화의 차이점은 방법론과 정치 성향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02년에는 대북관, 경제관에서 양 극단에 서있던 후보가 ‘당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뭉쳤다면, 이번에는 ‘정권교체’라는 공통의 이해 관계를 앞 세워 상대적으로 이념의 차이가 적은 후보가 하나가 되고자 나선 셈이다. 물론 대북ㆍ안보관이나 대기업 관련 정책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만 2002년 노-정 두 후보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라는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또 단일화 합의까지 과정도 정 반대다. 2002년에는 실무진간 치열한 조율 끝에 두 후보가 나서 합의안을 수용하는 상향식이였다면, 이번에는 후보들이 나서 원칙을 정한 뒤, 실무진이 세칙 설정에 착수하는 햐양식을 지향했다. 또 2002년에는 단일화에 나섰던 정당이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서로가 안정된 모습으로 단일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차이점으로 꼽힌다.

최정호 기자 /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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