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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포폴에 영혼을 팔다
“마취에 이르는 효과량과 치사량 사이 폭이 좁은 약물”…그 경계에서 죽음이 어슬렁거리다
초기엔 투약후 피로회복감 오래 지속
반복할수록 효과 짧아져 더 자주 남용
병원 옮겨다니며 한달에 20차례 투약
한 중독여성 5년간 6억원 탕진하기도
병원들 장부조작 통해 ‘모르쇠 처방’


‘우유주사’라고 불리는 프로포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내연녀로 알려진 여성의 시신을 유기한 사건 때문에 이슈화한 프로포폴은 2009년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수면마취제로 유명세를 탔다. 수면유도 효과 외에도 환각 효과가 있어 불면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사이에서는 중독 사례도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프로포폴은 과연 어떤 약물일까.

▶부작용 일으키면 해독제도 없는 ‘죽음의 마취제’=프로포폴은 수면마취제로 성형외과ㆍ피부과 등에서 간단한 시술용으로 주로 쓰인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대두유에 혼합해 정맥에 직접 투약하기 때문에 ‘우유주사’로도 불린다.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가 본격 도마에 오른 건 지난 7월 강남 산부인과 의사의 시신유기 사건부터다. 실제 지난 7월 강남지역 산부인과 의사의 경우 피해자에게 “우유주사 맞을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적 팝스타인 마이클 잭슨의 사인 역시 프로포폴이었다. 미국에서는 ‘기억상실증 우유(Milk of Amnesia)’라고 불리며, 병원 관계자는 흔히 ‘포폴’이라 약칭한다.


대학병원 마취과 전문의 전모(32) 씨는 “프로포폴이 다른 수면마취제와 달리 체내에 축적되지 않아 마취에서 깬 환자가 편안하고 깔끔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며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거나 위험한 마취제는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다보면 내성이 생겨 정량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 많은 양을 투약하게 되고 이럴 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전 씨는 “프로포폴은 특히 마취에 이르게 하는 효과량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사량 사이의 폭이 아주 좁은 약물”이라며 “심폐 기능이 나쁘거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혈관 확장이나 쇼크가 올 수 있고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자, 심한 호흡기 질환자, 폐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고혈압이 있는 사람 등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심각한 경우 해독제도 듣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왜? 누가 프로포폴에 빠지나?= 프로포폴은 환각 효과뿐 아니라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개운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불면증이나 우울증ㆍ불안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가 찾는 경우가 많다.

강남의 모 성형외과 상담실장 김모(26ㆍ여) 씨는 “유흥업소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주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종사자 중 프로포폴에 중독된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씨는 “즉각적인 효과를 경험한 사람 중 다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몇 군데 병원을 돌아다니며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프로포폴을 맞으러 다니는 중독자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로포폴에 중독됐던 여성이 얼마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5년간 병원을 옮겨다니며 6억원가량을 프로포폴 투약을 위해 지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투약횟수가 증가할수록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투약 후 피로회복감이 오래 지속되지만 반복될수록 회복감이 사라지는 시간이 짧아져 더 자주 맞게 된다는 것. 


▶‘좀비’처럼 병원 옮겨다니며 한 달에 20차례 투여, 병원은 알고도 모른척=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일부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과다처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8일 신 의원이 밝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B(34ㆍ여) 씨는 지난해 6~9월 경남의 모 의료기관에서 프로포폴을 59회나 맞았다. 8월 한 달에는 무려 20차례나 투여받았다.

서울에 사는 C(37) 씨는 지난 2월 1주일 간격으로 2회, 3월 2~3일 간격으로 10회를 투여받고 그 다음달에도 3차례나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은 해당 병원에 ‘건강보험 적용불가’ 통보를 했으나 병ㆍ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프로포폴을 치료 용도로 계속 처방했다.

성형외과 상담실장 김 씨는 “강남권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전전하며 프로포폴을 맞으러 다니는 사람을 ‘좀비’라고 부른다”며 “팔뚝 등에 주사바늘 흔적이 있는 경우 중독자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일부 병원은 모른척하고 투약해주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밝혔다.

이처럼 병원의 모르쇠 투약이 가능한 이유는 프로포폴이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ㆍ약사가 약을 처방ㆍ조제할 때 알림창을 띄워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에서 같은 성분을 중복ㆍ과다 처방받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예방하는 DUR에 제외된 프로포폴은 한 환자에게 어느 병원에서, 얼마나 사용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음먹고 장부만 조작하면…분실 및 도난 꾸준히 증가=의약품 관리가 대학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한 개인병원 등에서 프로포폴은 몰래 유통된다. 시술 시 환자에게 5㏄의 프로포폴을 투약한다고 하며 실제로는 그보다 적은 양을 투약하는 ‘투약량 조작’, 병원약품장부에 기재하는 사용량을 부풀려 기록하는 ‘장부조작’ 등 수법이 다양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양승조 의원(민주당)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도 프로포폴류와 마취제인 미다졸람류의 경우 올 상반기 도난 및 분실 건수가 각각 8건, 4건으로 지난해(6건, 2건) 수치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박성진)는 프로포폴을 몰래 빼돌려 투약한 혐의로 지난 12일 구속한 의사 조모(44) 씨로부터 수십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투약시기 등이 담긴 리스트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검찰은 서울 강남지역 대형 병원도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투약하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 범위를 넓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프로포폴에 전자칩을 부착하고, 의약품관리종합정보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향정신성의약품 관리 강화 대책’을 지난 15일 발표한 바 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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