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미래지향적 도시정책, 마약 · 매춘 합법화…시민의식 실험장으로
<20> ‘두 얼굴의 도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낮엔 환경 생각하는 자전거의 도시
밤은 젊음의 욕망이 교차하는 광장
사회문제 다시 늘어 ‘규제’ 회귀 움직임
사람에 대한 신뢰 사라질까봐 씁쓸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이해준 문화부장] 오스트리아에서 4박5일 동안의 달콤한 휴식을 취한 다음, 풀어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고 신발끈을 다시 조였다. 북쪽으로 독일을 거쳐 덴마크로 간 다음, 거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럽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하는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자연과 예술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곳에서 마음을 비워서인지 발걸음도 가벼웠다.

오스트리아 다음의 목적지는 덴마크 코펜하겐이었다. 빈~코펜하겐 거리는 1600㎞에 달한다. 먼저 기차를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함부르크로 이동해 1박을 한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발트해를 넘어야 했다. 발트해를 넘을 때는 기차가 페리에 올라타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페리에 깔린 레일로 기차가 올라가는 방식이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상상력이 놀라웠다.

코펜하겐에서 이틀을 보내며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까지 돌아본 후, 네 명의 가족이 두 팀으로 나뉘었다. 각자의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첫째 아들은 현지 대안학교와 협동조합을 돌아보기 위해 코펜하겐에 더 머물기로 했고, 나와 둘째 아들은 꼭 들르고 싶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이렇게 따로 여행한 다음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야간열차를 이용했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해가 서녘으로 비스듬히 넘어가던 오후 6시10분 코펜하겐을 출발해 다음날 오전 10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16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단 둘이 여행하니 단출하기도 했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을 조금 더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인 뮤지엄플레인의‘ 아이 앰 스테르담(I amsterdam)’ 조형물 앞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광장 주변에 고흐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이 모여 있다.

암스테르담에 이틀간 머물며 하루는 반 고흐 미술관 등 주요 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음날엔 자전거를 빌려 도시 곳곳을 신나게 달렸다. 암스테르담은 말 그대로 ‘운하의 도시’다. 암스테르담(Amsterdam)이라는 명칭이 이곳을 흐르는 암스텔(Amstel)강과 제방을 의미하는 담(Dam)이 합쳐져 만들어진 데서도 드러나듯, 거미줄 같은 부채꼴 모양의 운하가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첫날 방문한 고흐 미술관은 감동적이었다. 미술관에선 그의 일생 연대기에 따라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였다. 놀라운 것은 37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0년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벗어나 과감한 터치와 강렬한 색채로 사물의 특징을 과감히 표현하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인상파 예술을 꽃피웠다. 이는 이후 상징주의, 표현주의 등 서양미술의 새 사조인 모더니즘의 모태가 됐다. 너무 감동해 방명록에 “20세기 예술은 고흐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써 놓고 미술관을 나왔다.

암스테르담은 고흐미술관처럼 문화와 역사가 흐르는 도시인 동시에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된 세계 유일의 도시다. 따라서 도시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이것을 즐기려는 젊은이들과 여행자들로 항상 들끓는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시내 중심부 레이즈플레인 광장에 접한 호스텔이었는데, 거리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소란을 피우는 청년들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내 침대는 3층에 있는 도미토리의 2층 침대였는데, 침대가 창문과 접해 있어 거리의 소음이 그대로 들려왔다. 새벽에는 앰뷸런스의 요란한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소란은 새벽 4~5시가 돼서야 잠잠해진 것 같았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지난밤의 열기를 반영하듯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공기는 축축하게 젖어 있고,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와 청소부들로 부산했다. ‘오늘 저녁엔 또 광란의 밤으로 쓰레기가 가득해지겠지. 내일 아침엔 다시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이게 암스테르담의 일상이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올라탔다.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자전거의 도시이기도 했다. 모든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교통 시스템도 자전거와 보행자 중심으로 구축돼 있었다. 사람들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해 자전거가 자동차를 밀어내는 양상이었다. 아들은 아주 신이 난 모습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운동을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자전거로 도시를 누비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자전거 물결을 보면서 한때 ‘자전거의 나라’였던 중국이 떠올랐다. 우리가 첫 여행지로 선택해 샅샅이 돌아보았던 중국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에 밀려나고 있었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너도나도 자동차를 선택하고, 도로도 자동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도 좀 불편하더라도 이를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성장’과 ‘개발’을 뛰어넘는 선진국의 면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홍등가에 들어섰다. 합법화된 매춘이 이뤄지는 홍등가는 저녁에 가야 제맛(?)을 느낄 수 있지만, 고교 3학년의 호기심 많고 혈기왕성한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터에 밤에 이곳을 돌아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외면할 수도 없어 자전거를 타고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아들도 말은 안 했지만, 가이드북을 통해 이곳을 훤히 알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홍등가엔 반라의 여성들이 윈도에 앉아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윈도의 노골적인 여성을 빤히 쳐다보기가 민망해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옆에서 페달을 밟는 아들로 얼굴을 돌려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며 “여기가 홍등가야” 하고 말하니, 아들은 곤혹스러운 듯 “빨리 달리기나 하세요!”하고 애써 외면하려 했다. 마음속의 호기심과 그것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과 곤혹스러움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듯했다. 나는 그저 흥미로운 관광거리 하나를 구경한 것처럼 태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들은 얼굴을 더 붉힐 뿐이었다. 그렇게 복합적인 마음을 나누며 홍등가를 벗어났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암스테르담은 두 얼굴의 도시였다. 한편으로는 환경과 미래를 고려해 자전거와 트램 중심으로 교통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시 곳곳에 공원을 조성한 선진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만 넘어가면 마약과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광란의 밤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다.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하는 곳이다.

이런 두 얼굴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시민의식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마약과 매춘을 허용해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한 것은 그들의 성숙한 의식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이 과연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한때 범죄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사회문제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단순히 ‘마약과 매춘이 가능한 도시’, 그래서 ‘막 행동해도 되는 도시’ 또는 ‘위험한 도시’라는 데 기울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네덜란드 정부는 과거의 근대적인 ‘규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에 대한 신뢰, 시민의식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그만큼 사회도 후퇴할 것 같았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면서도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의 실험이 실패한다면 앞으로 다른 도시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은 아예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암스테르담의 실험이 성공해 규제가 없어도 시민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사회는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hj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