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못지않은 권력자 ‘킹 메이커’
“킹메이커는 영원한 2인자일까?”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못지않게 ‘킹메이커’ 또한 주목받고 있다. 킹메이커는 뛰어난 전략과 행동력으로 대선후보를 승리로 견인하는 존재다. 이들은 목적을 달성할 경우 ‘정권실세’ ‘2인자’가 되어 막후에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역대 킹메이커는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1인자’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1인자에 도전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불운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표적인 킹메이커는 고 김윤환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노태우ㆍ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만든 ‘원조 킹메이커’로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지낸 그는 ‘반노태우’ 세력을 견제하면서 경북고 동창인 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도 대구ㆍ경북 의원을 결집시켜면서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권을 노렸지만 결국 이회창 후보를 돕기로 하며 그 꿈을 접게 된다. 그는 이 후보가 패배하자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1인자를 보좌했던 킹메이커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1인자가 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왼쪽 위부터 故 김윤환 전 의원, 김종필 전 총리, 이재오 의원.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가장 유명한 킹메이커로 꼽힌다. JP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YSㆍ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만들어낸 ‘변신의 귀재(鬼才)’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는 YS와 전격적인 ‘하얏트 회동’을 통해 민정계(이종찬) 대 민주계ㆍ신민주계(YS) 간 싸움에서 YS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97년에는 ‘DJP연합’을 선보이며 또 한번 킹메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중반쯤에 공동정권의 한계가 드러나며 DJP연합은 붕괴되었고, JP는 ‘킹의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한 채 영원한 2인자로 만족해야 했다.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문민정부의 또다른 킹메이커다. 그 역시 ‘9룡(九龍)’ 중 하나로 97년 대선 경선에 참여했으나 쓴맛을 봤다. 최 전 장관은 당시 신한국당 최대 계보인 민주계 좌장이었지만 YS가 그의 출마를 강력히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리틀 DJ’로 불리며 국민의 정부 탄생을 보좌했던 한화갑 전 의원 역시 2002년 16대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노무현 바람(盧風)’에 밀리면서 대권 꿈을 접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비박(非朴ㆍ비박근혜) 주자로서 대선 출마를 저울질했으나 경선룰 논란을 겪으면서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킹메이커는 킹에 버금가는 경력이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1인자는 포괄적이고 거시적 안목으로 국민을 향한 정치를 하는 반면, 킹메이커는 미시적이고 실무적인 면에 치중하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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