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로의 국제갤러리는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전경(37)과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강임윤(31)을 초대해 2인전을 개막했다. 두 작가는 현재 뉴욕과 런던을 무대로 왕성하게 작업 중인 30대 젊은 여성 작가로, 각기 독자적인 평면회화를 선보이는 것이 공통점이다.
▶전경의 흥미로운 심리적 스토리텔링 회화= 미국의 보스턴대학과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를 졸업한 전경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나 한국 전통회화, 근대 고전회화 등 다채로운 서사를 패러디하길 즐긴다. 작가는 캔버스에 한국의 전통한지를 올린 뒤, 말간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그림과 잘 부합된다. 파스텔톤의 반나체 소녀들과 익살스런 소년들의 이미지는 관람자를 즐겁고 천진난만한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면 폭력적이거나 쾌락적 행위가 난무한다. 재미있으면서도 기괴해 ‘이건 뭐지?’ 하고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전경은 이번 한국 전시에 후기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Waterlilies)’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을 출품했다. 푸른 호수에 핀 연꽃 사이를 오가며 뛰노는 아이들은 적잖이 목가적이지만, 상대를 몰래 흘겨보고 다른 아이들을 물에 빠뜨리는 사악한 행위를 일삼는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물 중에는 스스로를 자해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인물도 보인다. 성폭행을 당했는지 옷이 반쯤 벗겨진 채 흐느끼는 여인도 있고, 막 탈출을 감행하려는 북한주민도 보인다.
전경은 “실향민이셨던 할아버지께서 2년 전 돌아가시면서 ‘통일이 되면 북에 남은 가족을 찾아달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의 사연에 제가 상상한 이야기를 채워넣어 그림을 그렸죠”.
심리적 스토리텔링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전경의 그림에는 두려움, 상처, 충격과 같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정서적 성숙, 지혜의 축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파스텔 색조의 달콤한 그림은 주제가 결코 가볍지도, 아름답지만도 않다. 남북한 대치상황, 탈북자 인권, 한일관계, 위안부, 성차별, 국가 간 충돌 같은 묵직한 이슈들에 대해 주목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래 신화를 역동적으로 풀어간 강임윤=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슬레이드대학과 왕립미술원을 졸업한 강임윤은 런던은 물론 유럽에서 크게 각광받는 기대주다. 그는 이번에 강렬한 색상과 역동적인 붓터치가 돋보이는 몽환적인 회화를 출품했다.
작가는 신화에 특히 주목하는데, 자연과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신화만큼 제격인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고래 신화를 토대로, 상상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화를 즐겨 그린다.
이번 출품작은 영국 작가이자 시인 파비안 픽이 강임윤의 그림을 보고 쓴 시 ‘생각의 한 해/한 해의 생각’을 읽고 그 영감을 다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시를 읽고 느낀 마음 속 풍경을 그렸다”며 “시라는 추상적 언어가 내 작업과 잘 맞는 것 같다. 마음껏 상상하며 시의 세계를 표현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자연의 묘미와 변모하는 과정을 파워풀하게 표현한 강임윤의 그림은 신화를 독특하게 풀어가는 남다른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전시는 9월 23일까지. (02)735-8449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