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아버지’송승환 PMC 프러덕션 회장
고교동창이던 이광호 회장 설득프로듀서 시스템 극단 첫 설립
논버벌 퍼포먼스 붐 이끈 ‘난타’
97년 초연땐 10억원 이상 적자
“객석 텅비면 호연도 소용없다”
英 에든버러 난타 포스터로 점령
성공적 마케팅 세계진출 신호탄
국내 여행사 100여 곳과 제휴
작년 외국인관광객 70만명이 관람
1997년, 대한민국 공연문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사 하나 없이 흥에 겨워 두들기기만 하는 공연 프로그램 ‘난타’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무대 위 ‘퍼포먼스’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관객들은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난타’를 마주했고 이 희한한 공연은 ‘논버벌 퍼포먼스’라는 비언어극의 붐을 만들어냈다. PMC프러덕션의 회장이자 지금은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장을 겸임하고 있는 송승환. ‘난타’의 아버지인 그를 지난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 소재한 사무실에서 만나 PMC의 설립 과정과 성공 배경을 들었다.
▶PMC의 전신 환퍼포먼스와 PMC의 설립= 송승환 회장은 85년부터 88년까지 미국에 다녀온 후 이듬해인 1989년 PMC의 전신인 ‘환퍼포먼스’를 설립했다. 송 회장은 환퍼포먼스를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듀서 시스템 극단”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많은 극단은 대학 연극영화과 출신이거나 특정 연기자 중심으로 모인 단원 시스템 극단이었다. 하지만 환퍼포먼스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프로듀서 지휘 아래 작품을 기획해 단원을 섭외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95년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96년 ‘고래사냥’ 등 제작 규모가 큰 뮤지컬을 하다 보니 프로듀서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 송 회장은 ‘제대로 된 회계관리 시스템도 필요하고, 안정적인 투자와 인력도 필요해 회사를 법인화해 비즈니스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해 96년 ㈜PMC프러덕션을 출범시켰다. PMC는 ‘퍼포먼스(Performance)ㆍ뮤지컬(Musical)ㆍ시네마(Cinema)’의 약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극단으로 탄생했다.
이광호 현 PMC네트웍스 회장과 송 회장은 각각 1억원씩 출자해 자본금 2억원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환퍼포먼스 시절 송 회장은 가끔 고등학교 동기 동창인 이 회장에게 회사를 운영할 돈을 빌렸다. 그는 “내가 배우도 하고 DJ 활동을 하면서 돈도 곧잘 갚으니 믿는 구석이 있었겠죠”라며 웃었다.
어떤 아이템을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를 관리,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중요했다.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하고 이 회장에게 아예 같이 사업을 하자며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다른 사업에 손을 대고 있었고, 회사 경영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문화산업을 아느냐며 처음엔 고사했다.
송 회장은 “고민하던 친구에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을 선물했다”며 “치즈를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20대 때부터 연극을 연출하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은 송승환 PMC프러덕션 회장은 ‘난타’의 성공이 적극적인 마케팅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지중지 키워 올해로 15세가 된 ‘난타’는 누적 관객 수가 700만명을 넘어섰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역할은 송 회장이, 회사를 경영하고 관리하는 건 이 회장이 맡았다. 두 사람의 동업과 분업은 잘됐다. 실은 ‘난타’도 두 사람이 함께 만들었다.
송 회장은 “내가 ‘난타’를 낳았다면, 이 회장은 ‘난타’를 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16년간 함께해온 두 사람. 문득 방 안을 둘러보니 문이 2개다. 송 회장 건너편 방이 바로 이 회장 방. 문만 열면 서로 통한다. 일하다가 가끔 둘은 이 문을 열고 서로 큰소리로 얘기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 5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이제 150명에 이른다. 조직이 커진 만큼 조직관리, 시스템 구축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이 회장은 16년간 회사의 살림을 꾸리면서 내조했다.
▶‘난타’의 시작, PMC의 킬러콘텐츠로= ‘난타’는 PMC 출범의 산물이다. ‘난타’의 성장 과정과 성공 비결은 익히 알려졌다. 송 회장은 “회사가 유지되려면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낼 수 있는 킬러콘텐츠가 필요했다”며 “작은 국내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작품을 고민하다가 비언어극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논버벌 퍼포먼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언어로서의 한계 극복, 사물놀이란 우리만의 전통 리듬 채택, 남녀노소 이해가 쉬운 단순한 스토리는 ‘난타’가 가진 경쟁력이다.
지금의 PMC가 이만큼의 성장을 이룬 것은 ‘난타’ 때문이다. 지금도 ‘난타’는 PMC프러덕션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송 회장이 “PMC의 한 해 매출이 약 500억원인데 ‘난타’로 벌어들이는 수입(매출)은 연간 30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난타’가 공연 분야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록들은 놀랍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전 세계 41개 국 274개 도시에서 2만2000여회 공연이 이뤄졌다. 이 공연을 본 관객 수는 711만명에 이른다.
97년 ‘난타’의 탄생은 너무나 초라했다. 지금은 공연팀이 9개에 달하지만 97년 초연 때는 단 1개팀에 불과했다,
송 회장은 “회사를 만들고 난 후 6개월 만에 두 사람이 모은 자본금을 다 까먹었다”고 웃으며 털어놨다. ‘난타’는 초연한 해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다가 9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세계무대에 소개되고, 2000년엔 전용극장이 만들어지면서 안정적인 수익과 매출이 나왔다. 난타전용극장 개관 첫 해 PMC의 매출은 32억원을 기록했다.
2003년 9월 ‘난타’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공연산업에 있어 꿈의 도시라 불리는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뉴빅토리시어터(New Victory Theater)에서 막을 올린 ‘난타’는 이듬해 3월 오프브로드웨이 미네타라인극장에 난타전용관을 마련, 2005년 8월까지 공연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곧 승승장구, 성공의 길을 걸어간 ‘난타’는 PMC의 킬러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뮤지컬과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난타’ 덕이다.
▶적극적인 마케팅이 ‘난타’의 성공 비결= 난타의 성공에는 작품 외에 기업적 판매 네트워크 구축과 적극적인 마케팅도 기여한 바 크다. 송 회장은 20대 때부터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스무 살이었던 77년 연극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79년 극단76에서 연극 ‘루브’를 연출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당시엔 객석이 텅 빈 작품이 너무나 많았어요. 다들 작품을 열심히 만들 궁리는 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을 모을까’ 하는 궁리는 안 하는 거예요. 제가 직접 연극을 하면서도 텅 빈 객석을 보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가나 연출가, 배우만큼 마케팅하는 사람도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고 꾸준히 믿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마케팅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객을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마케팅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에든버러를 난타로 도배하라’라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송 회장은 98년 ‘난타’의 세계 진출을 준비하면서 미국 뉴욕과 LA,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 5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팔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던 중 ‘브로드웨이아시아’라는 배급사를 접하게 됐고, 세계 연극제 출품을 통해 작품성을 검증받고 쇼닥터의 컨설팅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라는 요구에 9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1200여개의 작품이 경쟁하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돈이 없어 친구에게 빌리고, 배우들은 무료 공연을 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관객을 모으는 게 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홍보담당자에게 빨간색의 ‘난타’ 포스터로 도배해 달라고 부탁했고, 결과는 매진이었다.
송 회장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마케팅 방법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넷도 발달하고 매체도 많이 달라졌지만 오프라인 마케팅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독특한 방법을 찾는 것일 뿐, 콘셉트는 바뀌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마케팅팀에 ▷전략적 사고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디테일한 실행력이란 그만의 세 가지 마케팅 원칙을 요구한다고 한다. PMC의 어린이뮤지컬 ‘로보카 폴리’가 그 예다.
“표를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 엄마입니다. 그들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보통 어린이뮤지컬은 광고시간이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드라마에 붙이라고 합니다.”
‘난타’의 또 다른 강점은 네트워크다. 송 회장은 오래전부터 관광산업과 공연문화의 연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2000년 난타전용관이 생기면서 이것을 적극적인 실행으로 옮겨왔다.
그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한국에 머무는 동안 공연을 본 사람이 110만명인데 이 중 70만명이 ‘난타’를 관람했다”면서 “이 같은 공연 인구 증가는 ‘난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없었던 수치”라고 말했다.
PMC는 100여개 국내 여행사와 제휴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어린이뮤지컬의 경우 100개가 넘는 어린이집ㆍ유치원과 연계하고 있다. PMC는 R티켓이라는 티켓 판매 사이트를 만들어 고객관리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와의 협업은 해외 관광객 유치에 많은 힘이 됐다. PMC는 관광공사의 도움을 받아 여행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도 하고 상품 소개를 한다. 송 회장은 일본을 예로 들며, 한국으로 관광객을 보내는 현지 여행사를 대상으로 한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광객이 입국할 때 이미 스케줄을 짜서 오기 때문이다. PMC는 봄과 가을 두 차례 해외 판촉행사를 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