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공기업에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과 끊임 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이 최고경영자(CEO)로 와야 합니다.”
3선 국회의원에서 공기업 CEO로 변신에 성공한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정권 말 ‘낙하산 CEO’ 논란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지난 5월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역대 신보 이사장 중 최초로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전문 CEO로 인정받은 그는 ‘몸 보신’ CEO를 경계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옛 방식만 고수하는 것은 조직의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 이시장은 대신 “공익과 변화, 혁신을 통해 공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CEO”를 강조했다.
지난 4년 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희망디딤돌’이 돼온 안 이사장이 지난 1일 서울 공덕동 신보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고희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에너지와 자신감이 넘쳤다.
장ㆍ차관을 호령하던 중진 국회의원이 장ㆍ차관의 수발이 된다는 것은 왠만한 인내심이 아니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그러나 안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중소기업 지원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다.
단적으로 신보의 2009년 신규 보증공급액은 17조7000억원, 2008년 대비 90.3% 증가했다. 당시 전체 보증지원액은 46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신보가 금융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안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공심(公心)’을 강조했다. 공심은 바른 양심 위에 공직자로서 헌신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안 이사장이 지난 2008년 취임 후 시종일관 강조했던 경영방침이다.
그는 “국회의원 출신이다보니 정치권이나 지역구 등에서 보증 청탁이 많이 들어왔지만 단 한 건도 들어 준 적이 없다”면서 “성장 유망한 기업을 선별하고(적정), 자금이 필요한 시점에(적기) 엄정한 심사를 통해 금액을 지원하는(적량), 이른 바 ‘3적 정책’으로 보증 질서를 확립했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공심 경영에다 ‘변화와 혁신’을 더했다. 보증 업무 전반에 물든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보수주의를 빼내기 위해서다. 변화는 바로 나타났다. 2009년 7월 보증한도 산출 기준을 직전 회계연도 매출액에서 ‘최근 1년 매출액’으로 바꾸고 ▷미래성장성 ▷경영능력검토표를 심사에 반영하는 등 선진화된 보증심사체계를 갖췄다.
안 이사장은 “기존 보증심사방법에는 해당 기업의 미래 가치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보증심사에 기업의 성장성을 포함하면서 보증 부실율이 0.2%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기업가치평가시스템’을 개발, 기업의 신용도와 미래 가치 평가를 결합한 신개념 보증의사결정제도를 도입했다.
연달아 히트 친 ‘온라인 대출장터’와 ‘일석e조보험’은 대표적인 혁신 상품이다. 온라인 대출장터는 신보 홈페이지에서 기업과 은행이 대출 정보를 교환하고, 가장 유리한 대출 조건을 제시한 은행을 기업이 선택하는 역경매 방식이다.
지난달 말 기준 대출 희망 기업 등록 건수는 2만527건으로, 이중 1만8444건이 약 2조32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특히 대출 평균금리는 온라인 대출장터 시행 전 연 6.22%에서 연 5.62%로 크게 떨어졌다.
일석e조보험도 반응이 좋다. 중소기업이 매출채권보험에 가입해 외상판매위험을 보장받고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결합금융상품으로, 출시 17개월만에 보험가입액은 3조931억원, 대출약정액은 7000억원에 달했다.
금융공기업 최초로 시도한 ‘스마트업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를 이용한 ‘현장 원스톱 보증서비스’는 보증금액이 5000만원 이하인 기업에 대해 현장에서 보증업무를 처리하는 서비스로, ‘무방문 보증기한 연장시스템’과 함께 아이디어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안 이사장의 열정은 ‘미래비전 2020’에 담겨있다. 중ㆍ장기적으로 공사형 금융공기업인 ‘한국기업금융공사’(가칭)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안 이사장은 “지금은 정부 주도형으로 운영되고 있어 보증 운용이나 예산, 인사, 사업 등에 자율권이 없고 미래 발전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보증 지원을 다각화하기 위해선 수익 사업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17일 퇴임을 앞둔 그는 여전히 변화와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정치판에서 떠난지 4년이 됐다. 정치판에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면서 “석달 정도 쉬면서 앞으로 할 일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 정치인에게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자신의 위신과 권능을 좁혀 나간다”면서 “국민에게 진심으로 봉사하는 정치인이 돼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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