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1년…우울한 성적표
對EU 무역수지 흑자 18억弗…전년 140억弗흑자에 비해 ‘참패’“車 등 관세인하품목 수출 늘어…그나마 흑자 감소폭 상쇄”
가방·화장품 등 사치품 수입급증…무선통신기기 등도 덩달아 늘어
소비자들 가격인하 체감도 미미…전동칫솔은 가격 되레 상승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났다. 유럽으로의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었다. 특히 가방, 시계, 화장품 등 명품류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 FTA 이후 한국이 유럽 명품 업체들의 효자 시장으로 급부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일단 1라운드는 유럽의 ‘승(勝)’이 확실해졌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올 연말에는 대(對)EU 무역수지 적자까지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다.
▶對EU 수출, FTA 때문에 망가졌나=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ㆍEU FTA가 발효된 지난해 7월 1일부터 지난 15일까지 한국의 대EU 무역수지는 18억달러 흑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흑자액이 140억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참패 수준이다. 대EU 수출은 48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1% 줄어든 반면, 수입은 469억달러로 13.5%나 증가했다.
FTA 관세 인하 혜택 품목만 따로 보면 수출은 20.2%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자동차가 38%, 자동차 부품이 15.8%, 석유제품은 23.9%나 증가했고 폴리에스테르, 안경테, 액세서리 등은 수출액이 400% 이상 늘었다. 하지만 FTA 혜택이 없는 쪽에서는 철저히 무너졌다. 선박이 -47.3%, 무선통신기기 -40.7%, 반도체 -44.7% 등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2.6%나 줄었다.
한덕수 무역협회장은 2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ㆍEU FTA 발효 1주년 통상관계자회의에서 “EU 경제가 매우 침체돼 우리 수출이 줄었다”면서 “FTA 적용 품목 수출이 급증해 그나마 흑자 감소폭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다른 시각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유럽 경제상황이 안 좋아도 이 정도 무역수지는 FTA 협상이 잘못된 것을 말한다”며 “전년도 실적이 워낙 좋았던 선박은 제외하고 봐도 나머지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韓 유럽 명품의 신 왕국으로=EU산 수입품은 FTA로 인한 직접 혜택 품목은 물론 비혜택 품목까지도 고르게 증가했다. 가장 눈길이 가는 품목은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사치품들. 가방이 35%, 화장품은 10.2%, 시계는 무려 51%나 수입이 증가하는 등 관세 혜택을 받는 제품은 12.9% 수입이 증가했다. 여기에 FTA 관세혜택과는 상관없는 컴퓨터(27.8%)나 무선통신기기(14.6%) 등의 수입도 덩달아 늘어나 EU 입장에서는 FTA로 인한 후광효과까지 보게 됐다.
EU 통계청은 지난해 EU의 대한국 수출이 전년 대비 16% 증가했고 수입은 8% 감소해 대한국 무역적자가 37억유로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전년(113억유로) 대비 3분의 1 이하로 감소했다. 여세를 몰아 지난 1분기에는 지난해 대비 67%나 줄었다. EU로서는 만성 적자였던 한국과의 무역수지가 곧 흑자로 돌아설 것도 기대하는 눈치다.
▶유럽산 제품 가격 더 내려야=FTA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이 느끼는 유럽산 제품들의 가격인하 폭 역시 아직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ㆍEU FTA 1년, 소비시장 변화와 과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가격인하 효과를 체감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체감 시기로는 55.0%가 ‘2~5년 이내’라고 답했고, 27%가 ‘5~7년 이내’를 내다봤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도 EU산 제품 9개 품목 중 전기다리미(-26.5%), 유모차(-10.3%) 등 6개 품목은 가격이 하락했지만 위스키 등 3개 품목은 가격변동이 없었고, 전동칫솔 등은 오히려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윤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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