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아~하! 관객들 무릎을 치다
치밀한 전개·퍼즐처럼 맞춰가는 재미…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등 추리물 인기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시간만큼 집중하는 때가 없다. 말끔하게 빠진 평면의 선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실의 처음부터 끝까지 선을 따라 죽 훑어가며 묶인 부분은 돌리고 빼고 뒤집어 조금씩 조금씩 풀어나간다.

흔히 추리물은 엉킨 실타래 풀기, 퍼즐 맞추기에 비유한다. 하나하나 맞춰가는 재미, 마지막 완성작을 봤을 때의 희열에 사람들은 중독된다.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갈수록 사람들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치밀한 전개에 매료되며 최근 소설ㆍ영화에 이어 연극ㆍ뮤지컬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추리소설이 앞장을 되넘겨가며 곱씹어보고 되돌아보는 재미가 있다면, 연극과 뮤지컬에는 배우의 대사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 관객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가며 즉석에서 배우와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일방적인 영화와는 달리 무대에서 관객과 배우가 호흡하는 뮤지컬ㆍ연극은 바로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것처럼 실감난다.

연극 ‘쉬어매드니스’, 최근 동명 영화의 재개봉까지 이뤄낸 ‘키사라기 미키짱’, 영화의 인기와 함께한 뮤지컬 ‘셜록홈즈’, 얼마 전 막을 내린 ‘쓰릴 미’, 우리가 흔히 아는 메리포핀스와는 전혀 다른 ‘블랙메리포핀스’ 등 추리물이 대거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과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그중 가장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즐겁고 유쾌한 한 편의 추리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한 소녀 아이돌 가수가 죽었다. 항상 발랄하고 미소 짓고 밝았던 그 키사라기 미키가 갑자기 죽었다. 원인은 자살. 1주기 추모식에 모인 5명의 열혈 팬은 그의 죽음에 서로를 의심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을 끼워 맞춘다. 미키짱의 죽음과 모두 연관된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조각들을 서로 하나씩 맞춰보며 의혹들을 풀어나간다.

대사 위주로 진행돼야 하는 극은 자칫 집중하기 힘든 연극 초반부를 코미디를 통해 극복했다. 사건에 대해 배경설명과 단초들을 제공해야 하는 초반부는 이에모토의 유쾌한 연기와 딸기소녀의 폭소를 자아내는 소품들, 스네이크의 코믹스런 대사와 야스오의 기묘한 행동, 기무라 다쿠야의 진지함 속에 숨어 있는 코믹한 반전들을 통해 즐겁게 웃으면서 관객들이 보다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웃고 떠들고 즐기다 넘어가면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연출가 이해제 씨는 “극 후반부에서 사건을 푸는 실마리와 근거가 되는 것들을 배우들이 앞부분에서 대사, 소품 등을 통해 흘리면서 전반부에 다 깔아놨다”며 “지나가는 농담으로 넘어갔던 부분들이 다 얽히고 설키는 어떤 근거들”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극을 두 번 세 번 보고 전반부를 감상하면 그런 장치들이 묘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나중에 밝혀지는 등장인물의 정체성 역시 극의 앞쪽에서 암시하는 부분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됐음을 강조했다.

웃고 즐기는 순간, 관객으로서 연극을 느끼기에 ‘키사라기 미키짱’은 추리물이라기보다 코미디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극이 가지고 있는 치밀한 전개와 사소한 단서들이 극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은 추리물로서도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이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5명의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가 선사하는 웃음으로 때론 잠시 동안의 감동과 눈물, 진지함조차도 이내 웃음이 되어버린다.

영화를 통해 작품을 접해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도 연극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은 대사와 극의 전개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국식으로 각색된 웃음코드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마지막까지 익살스런 한 편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운 서정성 짙은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아버지가 죽었다. 화재사고에서 보모 메리와 네 명의 입양된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1926년 독일을 배경으로, 극 중 유명한 심리학자 그라첸 슈워츠 박사의 죽음과 보모 메리, 네 명의 아이들인 한스ㆍ헤르만ㆍ안나ㆍ요나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추리물의 치밀함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동시에 갖춘 뮤지컬이다.

입양된 네 자매와 그들을 돌보는 보모, 화재사건으로 형체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아버지의 시신. 사건은 단순 화재사고로 끝날 뻔했지만 맏형 한스로 인해 진실이 점점 밝혀진다.

극 전체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매력적이다. 어렸을 적 즐거웠던 일을 회상하며 잠시 밝아지지만 이내 또 우울해지고 다시 긴장감이 감돈다.

현재와 과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입체적인 극 전개에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천진난만한 아이에서 상처 입고 살아왔지만 그 기억이 희미한 어른으로 변해갈 때 배우들의 표정과 움직임에 생생함이 있다.

단순히 대사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전달, 과장된 표현을 노래로 잘 담아낸 것도 돋보인다. 그냥 대사 연기로 보여줬다면 자칫 지나치게 과장돼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던 부분들이 노래의 멜로디와 박자를 통해 긴장감을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희미했던 그림이 서서히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 관객 나름대로 맞추고 있던 퍼즐은 감동적인 그림으로 변해간다. 추리물의 치밀한 극적 전개, 슬픈 이야기의 서정성을 동시에 갖춘 ‘블랙메리포핀스’는 한 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듯하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