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성 논문파문으로 본 표절·베끼기 현주소
석·박사논문 짜깁기 다반사의뢰인은 문장·문단 조합만
200만원만내면 언제든 가능
입시용 자기소개서 50만원
구직용 이력서는 3만원
외국계기업·영업직·공무원…
전문가 영역별 맞춤서비스도
#1. 최근 지방 소재 모(某)대학 금속재료공학부를 졸업한 A(28) 씨는 취직을 위해 대필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낙방했기 때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의뢰서를 작성하고 몇 가지 개인 신상을 입력한 뒤 3만원을 입금하자 며칠 안 돼 ‘그럴듯한’ 이력서가 날아왔다. 자신이 입력한 몇몇 신상이 잘 포장된 이력서를 가지고 여러 회사에 지원한 그는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다.
#2. 서울 강남에 사는 K 씨는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대학에 가기 위해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받았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 재학 중인 컨설턴트는 1시간 30분간 인터뷰를 한 뒤 석 장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줬다. 대필료는 50만원. 어지간한 논술과외보다 높은 가격이었지만 학부모는 “아이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별로 아까울 것 없는 돈”이라며 흡족해했다.
새누리당의 문대성 당선자가 대필(代筆) 논문 파문으로 탈당하면서 표절 및 대필 문제가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대필의 실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세상은 시끌버끌하지만 대필업체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성업 중이다. 학원가의 대필은 이제 구문이다. 대학 논문은 돈만 주면 대신 써주겠다는 곳이 즐비하다. 최근엔 입학사정관제도에 발맞춰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등 관련 서류를 대신 준비해주는 곳도 있다. 취업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등 입사 관련 서류도 신청 즉시 해결된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이제 ‘대필공화국’이 돼버렸다.
▶석ㆍ박사 논문은 ‘조립식 대필’이 대세=석ㆍ박사 논문 대필의 경우 최근에는 전면 대필보다는 주제 및 자료 등 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내용을 제공한 뒤 의뢰인이 이들을 직접 짜 맞추게 하는 방식으로 변형돼 활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을 설계도에 따라 조립하듯, 의뢰인은 만들어진 문장과 문단들을 조합하기만 하면 된다.
논문 컨설팅업체를 자처하는 A사는 “다른 업체를 찾아봐도 요즘 대필까지 해주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자료를 보내드린 후 의뢰인이 직접 작성하도록 유도하는데, 아직까지 이 과정이 어렵다는 의뢰인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교정 작업까지 해주기 때문에 의뢰인은 자료들을 대충 끼워 맞추거나 짜깁기만 하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작성을 의뢰인에게 맡기는 건 명분일 뿐 사실상 대필인 셈이다. 업체가 요구하는 석사 논문 컨설팅 대가는 보통 200만원 수준이다.
모든 업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필을 진행하는 건 아니다. B 업자는 “주제 선정부터 대필까지 다 해준다”며 “다른 곳에 맡기지 않고 직접 자료를 찾아서 만들기 때문에 표절이든 대필이든 걸릴 염려가 전혀 없다”고 꾀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석ㆍ박사 논문의 80%, 직장생활 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의 90%는 남의 손 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70만원만 내면 약 두 달이 소요되는 논문 한 편을 써주겠다고 했다.
▶구직난, 입학사정관제가 부른 ‘이력서 대필’=최근에는 논문보다는 이력서ㆍ자기소개서 대필 업체가 성업 중이다. 구직난과 입학사정관제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자기소개서 대필’로 검색을 해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업체가 검색된다.
C 업체는 자기소개서ㆍ경력기술서ㆍ독후감ㆍ연설문 등을 대필해준다. 이력서는 3만원, 자기소개서는 7만원을 받는다. 의뢰인이 기본사항을 적어 보내면 ‘작가’들이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공무원, 영업직, 외국계 기업 등 영역별 맞춤 전문작가가 따로 있다”며 “7명의 작가가 서로 비슷하지 않게 다듬어 대필의 질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 중에 기업 인사팀 출신도 있다”며 “자기소개서 대필은 불법이 아니다. 불법이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광고를 올리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업체의 자기소개서 대필 의뢰 게시판에는 10개월 동안 약 1500개의 글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