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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下山하는 것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
12년 의정활동 접고 총선 불출마…정장선 민주통합당 의원

의원직 내려놓기
왜 이자리에 있는지 회의감
이만하면 출세했다 생각해

여·야의 공천혁명?
한두달만에 공천 너무 짧아
전형적인 하향식·돌려막기

총선이후 야권연대는
100년정당 외치고 4년도 못가
통합보다 중요한건 이해·조정

해법은…
국회는 근본적으로 타협의 장
상대 존중속 치열한 논쟁해야


[대담=정덕상 정치부장]4ㆍ11총선을 앞두고 정치전쟁이 벌어졌는데, 정장선 민주통합당 의원(54ㆍ3선)은 편해 보였다. 합리적 의회주의자, 6년 연속 시민단체가 뽑은 국정감사 우수의원, 대학생들이 뽑은 거짓말을 안하는 정치인, 그래서 출마하면 당선이 유력시되던 정 의원은 12년 국회생활을 마감하고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바람잘 날 없는 여의도 풍경에서 비켜선 듯 보이는 정 의원은 “올라갈 생각만 하고 내려갈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 확률이 더 크다”고 말했다. 남들이 더 높은 곳으로만 향하고 있을 때 하산(下山)하는 정 의원을 지난 26일 만났다.


-왜 불출마했나. 일각에서 도지사 출마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던데.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 정치를 계속할지, 말지 지금은 모르겠다. 지역구와 국회 왔다갔다하면서 정형적인 일에만 매달렸다. 피말리는 선거전을 치렀다. 그런데 국회는 매번 난투극으로 마감됐다. 뾰족하게 해결되는 건 없고, 바쁘기만 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고 고민했다. 원점에서 모든 걸 생각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12년 국회의원의 아내, 첫마디는.

▶‘잘했다. 이만하면 당신 능력에 비해 출세했다. 국회 상임위원장도 하고 당 사무총장까지 하지 않았느냐. 이제는 내려 놓을 때가 됐다.’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지역을 한번 돌아볼 계획이다. 한ㆍ러 비즈니스협회장을 맡게 됐다. 푸틴 이후의 러시아를 한번 보고 싶다. 시간을 텅 비워 놓았고, 앞으로의 시간이 정말 기대된다.

-여론조사 부정시비, 경선 불복이 잇따르는데.

▶이유는 다 있다. 룰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공정하지 않아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소속 출마는) 성공 확률이 굉장히 낮다. 출발부터 약속을 깨는 것이다. 아쉽고 서운해도 깨끗하게 받아들이면 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도 높고, 국회의원직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텐데.

▶에베레스트 정복하고 남극까지 다녀온 산악인 허영호 씨는 자신의 책 ‘걸어서 땅끝까지’에서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만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산은 내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 산악사고도 내려올 때 더 많다. 결국 산을 정복하는 건 절반의 과정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그걸 전부라고 생각한다. 내려가는 것에 대한 철저할 준비가 없으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국회의원도 그렇고, 항상 끝없이 올라갈 수만은 없다. 어떻게 내려갈 것인가 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정치혁명을 한다고 했다. 4ㆍ11총선 여야의 공천을 평가하면.

▶한두 달만에 공천하는 건 너무 짧다. 지역에서 후보자 간 토론회조차도 못하고 유권자가 판단할 기회가 없어졌다. 새누리당은 휙 여론조사로 끝냈고, 민주당은 모바일 투표 공문 한번 돌리지 못했다. 전형적인 하향식 공천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돌려막기식 공천이 많았다. 정당이 자의적 판단으로 무조건 국민들에게 ‘수용하라’고 한다. 고질병 같다. 여전히 정치는 오만하다. 한국정치는 지역구도 속에 있고, 이런 게 개선되지 않으면 변화는 어려울 것 같다.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광주서 출마한 이정현같은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  

당선이 유력한데 왜 불출마를 선언했냐고 묻자 정장선 의원은 “산을 정복하는 건 절반의 과정에 불과하다. 내려갈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고 했다. 그는 “이만하면 내 실력에 출세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진=박현구 기자> / phko@heraldcorp.com


-정치에 절망했다고 했는데.

▶진보와 보수, 세대간, 지역간 갈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풀어줄 수 있는 집단이 없다. 국회가 그 역할을 못하고 있고 언론도, 종교도 못한다. 고치자고 말할 수 있는 권위있는 계층도 없어지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기는 커녕 갈등 속에 뛰어들고 있다.

-해법은 없는지. 

▶역시 국회다. 정당간 시각에 차이가 있겠지만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국회는 또 근본적으로 타협하는 곳이다. 이 두 가지 전제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매년 파국으로 끝나고 이것이 일상화하면서 지방의회까지 똑같이 그걸 배우게 됐다. 

-하는 일에 비해 국회의원은 특권이 많다는 비판이 많은데.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업무수행에 필요한 편의 정도다. 특권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정치불신 크니까 국민이 국회의원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다. 새벽부터 일만 하고 다닌 것 같다. 공부도 많이 한다. 그런데 막판에 벌어진 한두 번의 싸움으로 그간의 노력이 날아가 버린다.

-246개구 선거구 자체가 너무 조각조각 났다. 광역화하고 중대선거구로 바꾸자는 의견에 동의하나.

▶18대 국회에서 정치개혁 하나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단계적으로 하자는 야당 주장을 받아들이고,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헌법 개정안을 추진했으면 큰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야권연대가 성사됐지만 일부에서 총선 이후 더 복잡할 것 같다는 지적이 있는데.

▶선거 때마다 이름 바꾸는 민주당은 반성해야 한다. 100년 정당을 얘기했지만 결국 4년도 못갔다. 통합진보당과 틀린 부분이 존재한다. 한ㆍ미FTA도 진보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민주당은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근본적 반대는 아니다. 민주당은 미군철수도 아니다. 통합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갈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같은 식구가 됐으니 서로 이해하고, 다른 것은 조정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의 이념적 성향은.

▶중간, 오히려 보수에 가깝다. 지식경제위원장 할 때 재벌들에게 문어발식 확장하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 온다고 여러 번 경고했다. 공존은 보수의 가치인데, 이런 개념이 우리 기업은 희박하다. 남북문제 끌려다니는 것도 문제지만 이명박 정부처럼 무조건 적대시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에서 본다면 중간적 입장이라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 간 갈등이 많았는데.

▶이 대통령은 국회를 인정 안했다. 노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대통령이 의원 경험이 짧으면 국회를 혐오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운할지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업적을 꼽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나, 또 19대에 바라는 점은.

▶선거 때 준비했던 약속들을 가슴에 지니고 끊임없이 주민과 대화해야 한다. 항상 좋은 분들이 국회에 들어오지만 국회는 항상 엉망으로 마감된다. 각자가 국민을 대변하는 만큼 정당간에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벌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살기 힘든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서는 안된다.  

-12년 국회의원하면서 가장 슬펐던 기억은.

▶많지만 지경위원장 자격으로 유럽에 갔을 때다. 유럽에서 코리아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 현지 기업인들을 만나서 ”뭘 도와 줄까요“물었더니, “안 도와 줘도 괜찮으니, 제발 싸우지만 말라”고 하더라. 현지방송에 난투극 국회가 방영될 때마다 창피하다고 했다. 정말 슬픈 기억이다. 


<정리= 양대근 기자>
/bigroot@herla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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