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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가 ‘골목 추억’이 사라진다
밀려오는 프랜차이즈에 40년 ‘나그네 파전’도 속수무책
허기채울 값싼 분식점 대신
대기업 체인점만 우후죽순

거대자본에 빵집도 문닫고
명물서점 마저 경영난 허덕

대학가 추억의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교 골목 안까지 파고든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들로 수십년간 학교 앞을 지키던 터줏대감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다. 명물가게들이 대기업의 자본력과 마케팅에 밀리면서 대학가만의 낭만과 추억도 사라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22년 된 분식점 “비슷한 가게들이 더 이상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한양대 후문 맞은편 작은 재래시장 안에 자리한 ‘맛나분식’. 이곳은 20년 넘게 주머니 가벼운 한양대생들이 허기를 채우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프랜차이즈 분식점과 인근 왕십리 민자역사에 각종 식당들이 들어선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맞고 있다. 김정화(63ㆍ여) 맛나분식 사장은 “옛날엔 하루에 300인분도 팔았지만 요샌 많이 나가는 날도 200인분을 채 넘기기 어렵다”며 “더 이상 비슷한 가게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며 한숨을 내쉬었다.

▶‘맛’집 대신 ‘브랜드’집만 늘었어요=3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상점들이 대부분이었던 숙명여대 앞도 이젠 대기업 브랜드들의 향연장이 됐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등 내로라하는 커피전문점은 기본. 서브웨이, 이탈리안플레이트, 더 후라이팬 등 유명브랜드 음식점도 대거 자리했다. 1~2개에 불과했던 분식집도 5~6개로 늘었다. 대신 ‘딩스’(케이크전문 카페), ‘토마티네’(스파게티 전문점) 등 터줏대감 맛집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13년째 숙대 정문 앞에서 떡볶이 전문점 ‘달볶이’(달려라 떡볶이 줄임말)를 운영하고 있는 김진범 씨는 “1~2년 새 학교 앞이 많이 변했다. 예전 것이 거의 사라졌다”면서 “보면 떡볶이 집만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안 그래도 경기도 안 좋은데 정말 힘들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숙명여대 3학년생인 박모(22) 양은 “학교 근처 가게는 좀 저렴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엔 모든 게 일반 번화가랑 다른 게 없다.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다.



▶‘방송 많이 탄’ 40년 파전집도 “앞으로 장사 걱정돼요”=매스컴을 많이 타 꽤 유명한 대학가 맛집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37년째 경희대 인근  회기역 파전골목에서 ‘나그네파전’ 집을 운영하고 있는 공경자(77ㆍ여) 할머니. 그는 “이상하게 똑같이 장사하는데도 지난해 추석 이후 가게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일본에서도 취재를 오는 등 방송을 많이 탔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회기역 인근 힌 부동산 관계자는 “작년 이후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학교 앞에 대거 입점했다”면서 “대기업들이 입점하면서 매출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상가 월세가격도 높아져 어려움을 호소하는 영세상인들을 꽤 봤다”고 귀띔했다. 경희대 졸업생인 박성철(36) 씨는 “요즘 학교 앞을 가면 낯설기까지 하다”면서 “학교 다닐 때 자주가던 단골집도 없어졌더라. 대학시절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30년 된 학교 앞 서점 ‘변하거나 문닫거나’=음식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2년부터 건국대 후문을 지켜오던 사회과학전문서점 ‘인서점’은 최근 문화과학전문서점으로 전향했다. 2008년 학교 정문 앞에 ‘반디앤루니스’가 들어오자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 사회과학서적만 팔아선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어학서, 수험서, 대학교재, 베스트셀러 인문서적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심재법(33) 인서점 사장은 “기본 소장 능력이 우리보다 10배나 규모가 큰 대형 서점을 어떻게 이기겠냐”며 씁쓸해했다.

20년 넘게 건대 앞을 지키던 ‘건대글방’도 지상에서 지하로 점포를 옮기는 등 온갖 자구책을 모색했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3년 전에 문을 닫았다.

▶캠퍼스도 프랜차이즈가 점령, “대기업 빵집 들어온다고 나가래요”=서울대 중앙도서관 매점에서 5년 가까이 빵집 ‘삐에스몽테’를 운영했던 김순이(47ㆍ여) 씨는 최근 교내 점포를 접었다. 학교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우리는 매출의 10%를 학교에 수수료로 냈는데 대기업에서 25% 수수료 납부에, 인테리어비용까지 부담한다고 했다더라. 결국 밀렸다”며 하소연했다. 김 사장은 서울대 앞 고시촌에서 본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몇 년 사이 프랜차이즈 빵집이 5~6개 들어서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면서 “우리는 품질로 승부한다고 아무리 자신을 갖고 경쟁해봐도 대기업들의 물량공세는 어떻게 해도 감당이 안 된다”며 하소연했다.

황혜진ㆍ윤현종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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