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서북구 사는 A씨 동남구 의원 뽑으라니…누더기된 선거구
헌정 첫 게리맨더링 합법화로
수원·용인·천안 7개 선거구
멋대로 떼내고 붙이고…

여야, 텃밭 건드리지 않고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
지역 민심·생활권 철저 무시


# 천안시 서북구 쌍용2동에 사는 직장인 A 씨는 4월 총선에서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동남구의 국회의원을 뽑게 됐다. 국회에서 꼼수를 부린 선거구 획정안 때문이다. A 씨는 동남구의 지역구 사정을 전혀 모르고, 더더욱 실거주지가 행정구역상 달라 누구를 뽑아야 할지 난감하다. 20년간 서북구에 살아왔지만, 이제 서북구가 아닌 동남구의 일할 사람을 뽑게 된 것이다.



국회가 헌정사상 최초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을 합법화하는 ‘마술’을 부렸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공직선거법 법안의 글자 몇 개만 바꿔 위법인 선거구 쪼개 붙이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야가 밀실야합을 통해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악용한 것으로, 국민의 눈을 속인 대표적인 ‘꼼수 정치’다.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경기 파주, 강원 원주, 세종시의 3석을 늘리고, 영호남 각각 1석씩 2석을 줄여 의석수를 300석으로 늘렸다. 그리고 나머지 헌법재판소가 제한한 인구상한선인 31만 406명(2011년 10월 기준)을 초과하는 7개의 지역구를 가위질해서 마구 오려 붙였다.

정개특위가 밀실에서 만들어낸 선거구 오려 붙이기는 거의 예술의 경지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수원을)에 속한 서둔동을 떼서 수원시 팔달구(수원병)로 붙였고, 경기 용인 기흥구의 마북동과 동백동은 인근 처인구로 편입됐다. 용인 수지구의 상현2동 역시 용인시 기흥구로 넘어갔다. 천안시 서북구(천안을)의 쌍용2동은 천안시 동남구(천안갑)로 떼다 붙였다. 쌍용1동, 쌍용3동은 천안을 지역구인데, 쌍용2동은 천안갑이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또 경기 이천ㆍ여주는 이천을 단독 선거구로 하고 여주를 인근 양평ㆍ가평으로 갖다 붙였다. ▶그래픽 참조

이 같은 선거구의 조정은 전형적인 게리맨더링이다. 게리맨더링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것으로, 여야 정개특위 간사(주성영, 박기춘)는 헌재의 인구수 기준에 맞춰 분구(分區)해야 하는 지역구를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살짝 떼다 붙이는 조정작업을 감행했다.

국회는 27일 저녁 긴급하게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원 의석수를 300석으로 늘리는 선거구 획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정개특위에서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ㆍ하동이 경남 사천으로 편입되는 데 반발, 집기를 들어 던지려 하고 있다. 
                                                                                                <안훈 기자> / rosedale@heraldcorp.com


이 작업을 위해 여야 간사는 게리맨더링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25조를 뜯어고쳤다.

이들은 “구(자치구 포함), 시, 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다른 국회의원 지역구에 속하게 하지 못한다”는 문구를 “자치구, 시, 군”으로 개정, 게리맨더링을 금지하는 대상을 구(區)→자치구(自治區)로 변경해 게리맨더링 금지 지역을 축소했다.

자치구는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부산 울산 대구 등 특별시ㆍ광역시 하의 구를 의미한다. 이번에 경기 용인 수원 천안 등의 선거구 떼다 붙이기가 가능했던 것은 기존 법안에 명시된 ‘구’에 두 글자(자치)만 붙여 ‘자치구’로 축소하는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민주통합당 양승조 의원은 2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전형적인 게리맨더링이자 국회의원의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반대했다. 한 주요당직자는 “위법성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위법을 자행하는 꼴이니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도 현실적 난관에 봉착했다. 지역민들의 생활권을 모두 무시한 채, 대규모로 군과 구를 쪼개서 이리저리 떼다 붙였기 때문이다. 처인구로 편입되는 용인시 동백동은 지역의 성격 자체가 판이하다. 도시인 기흥구와 달리 처인구는 농촌지역이다.

19대 총선에서 용인 처인구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비례)은 “이 같은 게리맨더링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다”고 했고, 같은당 김호연 의원(천안을)은 지역구인 쌍용2동이 갑자기 천안갑으로 넘어가게 되자 “적어도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민심이 반영됐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수도권과 충청의 의석은 인구에 비해 의석이 각각 9%, 4% 적고, 호남과 영남은 의석이 각각 18%, 6% 과대평가돼 있다”면서 “여야가 자신들의 텃밭은 건드리지 않고 선거구를 누더기로 만들었다”고 분개했다.

<조민선 기자> / bonjo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