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준법지원인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법무부가 개정안을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를 거치지 않고 법제처에 바로 접수한 것이 화근이다. 총리실은 ‘법제처가 전문기관’이라는 주장이고, 법제처는 ‘총리실이 책임기관’이라 맞서고 있다.
7일 국무총리실과 법제처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2일 준법지원인 제도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법률 심사를 법제처에 접수했다. 법무부는 ‘5000억원 이상 기업’이 준법지원인을 채용하도록 한 개정안을 올렸다. 이에 따라 변호사나 상장회사 법률부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 등은 상장기업에 준법지원인으로 채용 될 수 있다.
준법지원인 제도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직원을 각 기업들이 채용하도록 한 제도다. 의무는 아니지만 정부는 준법지원인을 채용할 경우 형사처벌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기업에 주게된다. 그동안 이 제도는 ‘변호사 일자리 만들어주기’ 법안이라는 지적을 받아왔고 재계는 비용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해왔다.
문제는 이 법안 통과 과정에서 법무부가 던진 ‘알쏭달쏭한 문제’를 두고 총리실과 법제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
문제의 핵심은 준법지원인 제도를 규제로 볼 것이냐 아니냐다. 현행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를 신설할 경우 법제처보다 먼저 규제개혁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무부는 그간 상법이 ‘규제’로 평가됐던 적은 없다며 ‘규제가 아니기 때문에 규개위 과정을 생략하고 법제처에 접수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리실 규개위는 24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18명이 민간인 출신이라, 규개위를 통과할 경우 준법지원인 제도 적용 대상 기업이 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총리실 규제개혁실은 “법제처가 법을 다루는 전문기관이기 때문에 해석을 받아보겠다”며 상법 개정안이 규제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법제처에 미루고 있다. 반면 법제처는 “해당 법안의 1차적인 법 해석 기관은 총리실이다. 법제처의 해석을 받겠다는 것은 총리실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사안이 예민한만큼 향후 불거질 수 있는 논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길’을 선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법안 발효 이후 무효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가 ‘규개위 심사를 안거친 상법 개정안은 무효’라며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삼을 경우 법안이 발효되더라도 시행되지 못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개정 상법은 오는 4월 15일부터 시행된다.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의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통상 45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이달 말 이전까지는 법제처든 총리실이든 관련 규정에 대한 심사 평가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홍석희 기자 @zizek88>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