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2세 정치인 ‘아버지’를 지워라?
“정치 하지 않을 것”다짐하지만 자신도 그자리에…선배로서 존경의 대상이자 넘어서야 할 극복의 대상이기도
집안살림·자녀들에겐 소홀했지만

국가발전 기여한 지도자로선 존경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

선대의 그늘 벗어버릴 순 없지만

나만의 컨텐츠로 ‘홀로서기’는 숙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4ㆍ11 총선을 앞두고 지난 세밑부터 많은 정치 신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각 지역에서 분주하게 얼굴을 알리고 있다. 지난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 중엔 2세 정치인, 아버지가 정치인이었던 인물들도 여럿 섞여 있다. 배신과 협잡, 계략,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 허구한 날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그 ‘정치’를 이들은 왜 대를 이어 하려는가? 대다수의 아들들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그늘, 왜 이들은 또 다른 그늘을 만들려 하는 것일까?

▶2세 정치인, 그들에게 아버지란?=이 땅의 아들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반드시 넘어야 할 하나의 큰 산이다. 많은 문인들은 아버지란 존재를 극복의 대상이자 결국 돌아와야 할 자리로 그려왔다. 시인 이성복은 그의 시를 통해 이를 ‘살부(殺父)의식’이라고 표현했다. 가정은 뒷전이고 바깥일에만 전념하던, 술판과 도박장을 전전하던 옛날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아들들은 항상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그런 아버지의 자리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2세 정치인들의 무의식의 기저에는 이 같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내재돼 있는 듯하다.

올해 총선에서 서대문을 지역에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의 김영호 예비후보는 김상현 전 민주당 의원의 아들이다. 김 후보는 서대문을에서 벌써 3번째 도전하고 있다. 그는 “이젠 지역에 얼굴도 많이 알려지고, 주민들도 진심을 알아주는 듯하다”며 이번만큼은 당선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정치신인은 아니지만, 언론인 출신의 중국 전문가로 정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한 유망주다.

그 역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며 정치일선을 누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양면적이다. ‘정치인 김상현’은 존경하지만 ‘가장 김상현’으로서는 아쉽다. 김 후보는 “어릴 때 민주화 운동 하던 아버지가 고문을 당하고 돌아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자주 봤다”며 “아버지의 살가운 사랑을 받지 못한 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한 정치인으로선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출신 원로 정치인들의 2세들은 정기적 모임을 갖는다. 이들 중엔 김 후보와 같이 정계 진출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회사원 등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임이 끈끈한 이유는 어린 시절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세 정치인들은 아버지의 잔정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아버지의 정치활동 때문에 기관원들에게 고초를 겪었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넘어서야 할 ‘아버지의 정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일ㆍ김홍업 전 의원. 이들은 2세 정치인이라는 수식이 무색할 정도로 잘 알려진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자제로 산 이들의 인생 자체가 정치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인 박 비대위원장은 최근 아버지의 정치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며 정책을 통해 아버지를 극복하려는 모습이다. 1960~70년대 개발시대와 전혀 다른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보수적 가치만을 옹호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의 친서민 복지정책으로의 선회는 과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젖은 유권자들에겐 일견 ‘살부의식’의 과정으로 비칠 수 있다.

나머지 2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여론의 세습 논란 등을 피하고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와는 다른 정치적 행보를 고민한다. 가장 듣기 껄끄러운 얘기가 바로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정치한다”는 비아냥이다.

이에 정호준 민주통합당 중구지역위원장은 “일본의 3대 우동집에 사람들이 3대째 이어온다고 가는 게 아니라 그 맛이 변함 없고 입에 맞기 때문”이라며 “이젠 유권자들도 2세 정치인이 가진 능력과 그의 콘텐츠를 본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이고, 조부는 고 정일형 전 신민당 부총재다. IT 전문가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그는 대화와 타협이 없는 현실정치에 분노하며 8년 전 정치입문을 결정했다. 그는 ‘막강한’ 후광을 갖고 있음에도 지난 18대 총선에선 공천에서도 밀리는 아픔을 겪었다. 건국 세대인 할아버지와 민주화세대인 아버지의 정치적 성과까지 자신이 물려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8년 동안 중구지역을 누비고, 젊은 세대에 맞는 정치 어젠다 제시 등 그런 각고의 노력이 없었다면 여전히 아버지 이름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본인이 어떤 정치적 역량을 현실 정치판에서 보여주느냐가 아버지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2세 정치인들의 세습ㆍ후광 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꾸준히 선수(選數)를 쌓으며 대중에게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거나 선대를 뛰어넘는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지 않고 본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긴 어렵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boh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