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삭제, 재창당, 현역의원 학살 공천 등 연일 바람잘날 없던 한나라당 쇄신 논란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줏대가 있어야 한다”는 일갈에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재창당을 주장하며 원내 중심 정당이라는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했던 쇄신파들은 약속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고, 친이계 의원들도 일단 공천 결과를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18일 열린 비상대책위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야당은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영남과 서울 강남 등지로 출마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뺄셈의 정치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자숙과 단합을 촉구했다. 친이계 및 쇄신파, 그리고 강남이나 대구ㆍ경북 출마를 노리던 비례대표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대위의 공천 개혁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날 연석회의와 전날 의총을 계기로 당분간 공천 관련 불만들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현역의원 평가 방식이나 지역별 특수성 반영 같은 기술적 문제가 남아있지만, 객관적 평가에 따른 공천이라는 큰 원칙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전날 의총에서 “전략 공천은 강세 지역에 아무나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고 불출마 선언, 사고 지구당 등을 다 포함하는 것”이라며 현역 절반 물갈이 설 등 당 내 불안감을 잠재우는데 주력했다.

재창당과 당명 개정을 요구했던 쇄신파 및 일부 친이계 의원들의 요구도 ‘재창당 불가ㆍ당명 개정은 검토 가능’으로 교통정리 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박 위원장은 의총에서 재창당 논란과 관련 “줏대가 있어야 한다”며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반면 당명 변경에 대해서는 “실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혀, 가능성을 열어놨다.

남경필, 구상찬, 김세연 의원 등 원내 중심정당으로 재창당을 연일 노래불렀던 쇄신파들은 이날 오전 예정됐던 모임과 성명 발표를 취소했고, 중진ㆍ비대위 연석회의에서도 한나라당의 정통성은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이날 중진ㆍ비대위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경제 의원은 “이름을 바꾼다고 지지도가 올라가느냐”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당명 바꾸는 것이 과연 진정성있게 보일지는 의문”이라며 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 같은 한나라당의 모습은 설 연휴까지 일시적인 ‘휴전’에 불과하다는게 정치권의 평가다.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이 완료되고, 본격적인 현역 의원 평가가 시작되는 설 연휴 이후에는 계파별, 또는 의원 개인별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날 저녁 여의도 인근에서 열린 의원들 개별 모임에서 “민주주의를 하자는 정당이라면 사람들의 중지를 모아가야 하는데, 비대위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물갈이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 자리를 채울 경쟁력 있는 새로운 인사를 얼마나 영입했느냐” 같은 불평과 불만이 속출한 것도 불안한 ‘휴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