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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전 경성사람들 지금보다 영화 더 즐겼다
신문기사로 본 1923년 조선의 극장풍경

1인당 年 4회 영화 관람
현대인 年 3회보다 많아

찰리 채플린 투어 소식 보도
당시에도 미국영화 큰 인기

연예인 도박·폭행사건 화제
연예계 풍경도 지금과 닮은꼴


“근래 경성 시내에 있는 각 활동사진관에서 영사하는 활동사진의 종류도 그 수효가 점점 많아져서 만약 좋지 못한 의미를 포함한 사진을 영사할 때에는 관람자의 사상에 적지 아니한 영향이 미치어, 요사이 활동사진을 구경한 아희(아이)들이 철로 궤도에다가 돌을 놓아 기차를 파괴하려는 전례도 있으므로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에서는 이것을 엄중히 취체(取締ㆍ단속)하고자 제일차의 계책으로 교육가와 경찰관이 협의한 결과 활동사진으로부터 생기는 악감의 방지단을 조직하리라더라.”

1923년 1월 13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활동사진을 개선, 좋지 못한 사진을 영사하면 좋지 아니한 영향이 있다고’라는 제하의 기사다. 한국영화사 초창기였음에도 당시 영화관람이 얼마나 일상화됐는지, 영화가 대중들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1923년은 한국영화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한 해로 꼽힌다. 최초의 극영화인 ‘국경’이 1월 단성사에서 개봉했고, 그해 4월 9일 밤 경성호텔에서는 각 신문 통신사 기자 및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하의 맹서’가 ‘시험영사’됐다. 이 두 작품은 온전히 극장상영만을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며, 조선인 감독이 연출하고 조선인 배우가 출연한 명실상부 조선 최초의 본격영화였다. 당시 매일신보는 ‘조선영화 대활극 국경 전십권’ ‘대활극 조선인의 영화’라는 표현으로 ‘국경’의 광고와 기사를 실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의 영화ㆍ연예계와 극장가 풍경은 어땠을까. 한국영상자료원이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3년’ 편을 최근 발간해 눈길을 끈다. 지금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화제도 풍성했던 게 당시 영화, 연예계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도 경찰부의 1922년도 경기도 흥행성적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활동사진 관객이 96만1532명으로 당시 극장시설과 인구를 감안하면 경성사람은 1년에 1인당 약 4일씩 영화를 봤다. 최근 연간 극장관객이 1억5000만명 전후로 1년 동안 1인당 평균 3번 정도 영화를 관람한 꼴이니 90년 전 경성사람들이 지금 관객보다 훨씬 더 영화를 좋아했다는 말이다.

1920년대에는 무장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확산되던 시기로 당국에선 검열을 강화했다. 4월 11일의 기사에는 “비밀결사나 모험적 활동사진을 조선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금지”한다는 등 당국이 발표한 6가지 단속사항을 전했다. 여기에는 “변사가 야비한 말로 관중을 농락하는 것 엄중 금지” “동반인 외에는 남녀가 한곳에 앉지 못하게 할 것” 등이 포함됐다. 

①최초의 극영화 ‘국경’이상영된 1920년대의 단성사. ②‘월하의 맹서’ 시험영사와 관련한 기사를 실은 매일신보. ③1923년 제작된 ‘춘향전’과 관련한 매일신보의 기사.

그때도 미국영화가 역시 대인기였다. 해외스타의 소식도 신문기사의 한쪽을 차지했다. 1월 23일엔 상하이발 기사로 “미국 활동사진 배우로 세계에 유명한 찰리 채플린이 금년 봄 활동배우 오십 명과 동행하야 상해를 거쳐서 일본까지 올 예정”이라는 투어 소식이 보도됐다. 채플린과 함께 ‘더 키드’에 출연해 일약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아역배우 재키 쿠건의 이야기도 찾을 수 있다. “금년에 겨우 여덟 살 된 어린아이인바, 크고 검은 눈과 부드럽고 사랑시러운 미소가 관극자의 마음을 기쁘게 하므로 이 아이의 사진이 나왔다는 때에는 언제든지 만원이 됨으로 매년 일백만불의 연봉을 받는다는데 미국 대통령의 연봉에 비하면 약 십배라더라”는 기사가 4월에 실렸다.

당시 최고의 연예인은 변사와 기생이었다. 1923년 제작된 ‘춘향전’엔 인기 변사 출신인 김조성이 이도령 역을 맡고, 개성의 명기 한명옥이 타이틀롤을 연기했다. 오늘날과 같이 연예인들의 자선활동도 중요한 연예가 소식 중 하나였다. 매일신보는 4월 19일 “정겨운 고향을 떠나 멀리 산설고 물설은 만주 쓸슬한 벌에 헤어져 아이 업고 외로운 고생살이를 하여 가면서 모국의 영화와 조상의 이름을 빛내고자 힘쓰는 여러 어린(불쌍한) 동포들을 위해” 단성사에서 기생권번 소속 기생 연주회와 명창 공연 등 대규모 연예회를 닷새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8월엔 각 신문들이 각지에서 발생한 수해 구제를 위한 자선기금 마련 춘천 기생 연주회 소식을 실었다.

이때부터 벌써 연예인 도박 및 폭행사건도 화제였다. 동아일보는 일본 배우 5~6명이 극장사무실에서 노름을 하다가 들켜서 경찰이 출동했는데 범인들이 경관을 난타하다 체포됐다는 소식을 도쿄발로 전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자료=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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