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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도전의 무한월드, 무한진화<上>
MBC 예능물 ‘무한도전’은 이제 하나의 ‘세계’다. 이 안에서는 못하는 게 없다. 모든 것 앞에 ‘무한’이라는 두 글자만 붙이면 된다. 벌써 횟수로 8년째 이어지며 무한 진화하고 있다.

유재석 등 일곱 멤버와 김태호 PD는 매번 형식 실험에 도전한다. 유재석이 방송 중 툭 던진 말 한 마디에 실제로 알래스카로 가 ‘김상덕 씨 찾기’ 아이템이 나오고, 박명수가 흥얼거린 정체불명의 랩에서 “오호츠크 돌고래 떼 죽음을 찾아서”라고 말해 결국 멤버들은 오호츠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홋카이도 설원을 기차로 달려 오호츠크해 유빙을 만나는 등 혹독한 겨울을 체험했다. 말만 하면 미션이 되고 도전이 돼 결과를 볼 수 있는 곳, 이곳이 ‘무한도전’이다.

물론 ‘데스노트’처럼 ‘무도’의 실험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간혹 너무 실험적이고 전위적일 때도 있고 마니아적이어서 나이 든 시청층의 유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식상하지는 않다.

‘강변북로 가요제’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나름 가수다’가 방송되고 나면 각종 음원차트를 휩쓴다. 시청층을 넓게 확장시킨 ‘타인의 삶’ 편,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준 텔레파시 편, 시청자가 의미를 찾게 만든 스피드 특집, 방송을 독점하기 위한 멤버들이 치열한 추격전을 펼쳐 다매체 방송 환경을 풍자한 ‘TV 전쟁’ 특집은 ‘무도’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한 나비효과 편은 기발한 창의적 발상으로 웃음과 감동을 주며 공익적 가치까지 실현시켰다. 북극 얼음호텔을 몰디브 리조트 바로 위 2층에 지어 북극에서 빙하가 녹은 물이 인도양의 몰디브까지 와 섬이 점점 잠기고 있다며 에너지 과잉 사용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알렸다.

일본에 가서 봅슬레이 경기에 도전해 비인기 종목의 실상과 가치를 생각하게 했고, 한국의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에 가서 비빔밥 등 한식 요리대결을 벌이고 ‘뉴욕타임스’에 비빔밥 광고를 싣기도 했다. 스포츠에서 비인기 종목의 문제와 한식의 세계화라는 공익적 가치를 담았지만 절대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새로운 미션과 특집에 계속 도전하다보니 정재형, 이적, 장윤주, 데프콘, 스윗소로우 등이 넓은 의미의 ‘무도’ 패밀리가 돼버렸다는 점도 ‘무도월드’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능물이 히트하면 그 포맷의 형식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매번 새롭게 시도한다. 항상 새롭게 도전하기에 기대 이하의 반응이 나오더라도 그 진정성만큼은 의심받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진정성을 믿는 또 하나의 요인은 프로그램 속에 배어있는 그들의 ‘노력’과 ‘땀’이다. 봅슬레이 특집, 댄스스포츠 대회 출전, 프로레슬링, 조정 경기 도전은 단시간 내에 ‘결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묵묵히 반복 연습, 훈련을 수없이 쌓아야 하는 미션들이다. 부상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한 주 방송을 위해 5일 녹화하는 경우도 있다. 박명수는 아침 일찍 불려나와 “오늘은 또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라며 김태호 PD를 향해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농업적 근면성’을 발휘하며 한 단계 한 단계 미션을 이뤄나간다.

이처럼 투자한 시간에 비해 방송되는 분량은 얼마되지 않아도 콘텐츠의 밀도는 크게 높아진다. 요즘 예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 진정성이 살아나는 것, 자주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동이 커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김태호 PD는 2011년 MBC 연예대상 시상식 방송에서 “7명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관계가 수십 수백 가지가 되니까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무한도전’이 무한 진화해온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상,하로 나눠 살펴본다.



▶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장르의 개척자

2005년 4월 23일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 코너로 시작된 ‘무한도전’은 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장르를 개척했다. 다른 예능물에 큰 영향을 미치며 여전히 장수하고 있다. ‘무한도전’보다 후에 생긴 리얼 예능 ‘1박2일’은 오는 2월 종영을 앞두고 있으며 ‘패밀리가 떴다’는 시즌2에서 ‘김’이 빠져버렸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방송 장르는 ‘무한도전’이 처음 만든 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리얼리티 쇼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사용되는 리얼리티 쇼라는 용어도 엄밀히 따지면 장르명이 아니다. 사실에 기반하는 예능이라는 뜻의 ‘팩추얼 엔터테인먼트’(Factual Entertainment)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2001년 프랑스에서 첫 리얼리티쇼 ‘Loft Story’가 방영되자 사회 전체가 난리가 났다. 한 외딴집에 20대 남녀 11명을 모아놓고 26대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사생활을 화장실과 침대까지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미국에서도 ‘현장고발 치터스’ ‘서바이버’ 등의 보다 독한 리얼리티쇼가 유행했다. 서구와 우리의 리얼리티 쇼가 다른 점은 서구는 일반인이 출연했는 데 반해 우리는 연예인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한국 시청자에게는 일반인보다는 연예인이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구미의 리얼리티쇼가 일반인 출연자의 사생활을 보면서 허구적 동일시를 느끼도록 유도한다면 한국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연예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쇼 형태를 띤다.



▶리얼리티+캐릭터쇼 형태 정착시키다

‘무한도전’ 이후로 리얼 예능에서는 캐릭터 구축이 매우 중요해졌다. 각 캐릭터에 분명한 성격을 부여한 후 캐릭터들 간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과 에피소드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무한도전’도 캐릭터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캐릭터들의 분명한 차이와 특성이 부각되면서 인기가 급속히 상승했다. 이전의 오락프로그램은 주로 연예인들끼리 사담(私談)을 늘어놓거나, 정해진 각본에 따라 게임을 하거나, 남녀 연예인들이 짝짓기를 하면서 춤과 노래 등의 개인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무한도전’ 이후 리얼 예능프로그램은 구성만으로 끌고갈 수 없었다. 오히려 출연자의 특성이 무시된 채 구성과 포맷이라는 시스템에 몰입하게 되면 금세 식상함을 느꼈다.

‘무한도전’은 아예 형식이 없다. 7명의 남자 캐릭터만 있다. 이들이 매주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미션과 에피소드를 수행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매주 실험정신을 발휘해 식상함을 극복했다. 정말로 무모한 도전 같다. 하지만 캐릭터만은 분명히 잡혀있다. 이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자산이다. 캐릭터가 잡히면 얼마나 상황을 펼치기 편리한지 ‘무한도전’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의좋은 형제’와 ‘의상한 형제’ 편은 평소 마음에 드는 멤버집 앞에 쌀가마를 놔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멤버 집앞에는 쓰레기 봉투를 놔두고 오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인데도 캐릭터에 의한 맴버들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속에서 1시간여 동안 재미를 뽑아낼 수 있었다. 캐릭터가 잡혀있으니 좋은 놈, 나쁜 놈, 어색한 놈, 굴러들어온 놈 등으로 각자가 벌이는 두뇌, 심리싸움이 흥미를 유발한다. 캐릭터명은 한 가지로 고정 불변한 게 아니라 조금씩 바뀌며 성장하고 진화한다. 멤버들의 캐릭터명은 무척 다양하다. 캐릭터들의 이미지는 약간 모자라는 콘셉트여서 금세 친근감이 생겼다. 다소 심한 말을 해도, 또 무리한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된다. 이들에게 사소한 갈등이 없고 모두 장점만 지니고 있다면 무슨 재미로 봐주겠는가? 정형돈은 개그맨인데 웃기지 않았고(지금은 ‘무도’의 대세가 되었지만), 하하는 잘 생겼는데 키가 작다. 이렇게 상반되는 느낌의 이미지는 현실성을 획득하고 애정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친구나 주위 사람에게 얘기할 때 “너는 다 좋은데 한 가지는 문제가 있어”라는 느낌과 유사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 



▶출발은 미약했지만 매주 새로운 실험의 뚝심

‘무한도전’이 처음부터 바로 황금기를 구가한 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은 미약했다. 2005년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 코너로 시작됐다. 이 해 10월 29일 김태호 PD가 새 연출자로 입성하며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바뀌었다. 시청률 4~6%에서 맴돌던 시절이었다. 땡볕에서 연탄 나르기, 목욕탕 물 퍼내기, 놀이기구에서 립스틱 바르기, 아이스 원정대 등 제목 그대로 달성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도전할 가치가 없는 목표를 설정해 진행됐다. ‘무리한 도전’은 2006년 5월 6일 ‘미셸 위와 함께’ 편을 시작으로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독립편성된 ‘무한도전’은 출연진들의 캐릭터가 잡혀가면서 서로 자신의 사는 얘기를 개그의 소재로 삼아 토크와 게임을 나누고, 장난도 치면서 적당히 몸개그도 보여주었다. 서로 어색한 관계였던 하하와 정형돈의 ‘빨리 친해지길 바래’와 ‘형돈아 놀자’, 의외로 노홍철의 깔끔한 모습을 보여준 ‘홍철이 집 기습 방문’ 등 멤버들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코너들은 이런 형태에서 나왔다. 슈퍼모델 특집, 댄스스포츠 대회 등은 감동을 줄 만한 도전이었다. 김장 특집이나 ‘영어 마을 가다’ ‘나를 찾아 떠나는 인도 여행’ 등은 프로그램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무한도전’만의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나온 코너들이다. 벼농사특집,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명수는 12살’ 등은 ‘무한도전’만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아이템이다. 매년 제작되는 ‘무한도전 달력’ 수익금과 ‘박명수의 기습공격’ 등 특집코너를 통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부도 실천해 왔다.(下편으로 이어집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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