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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완의 후계자’라 여겼던 김정은…그는 이미 ‘권력자’였다

북한을 너무 몰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예측했던 숱한 시나리오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27세 김정은에게 ‘미완의 후계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을 때, 북한 노동당은 22일 ‘혁명위업의 계승자ㆍ인민의 영도자’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절대권력 붕괴에 따른 북한 내부의 동요 조짐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발표 하루 만에 미국과의 협상테이블에 나서는 기민함도 보였다. 김 위원장이 양치질하는 것까지 알 수 있고, 차량 타이어 상표까지 샅샅이 감시한다고 하던 한ㆍ미 양국의 대북 정보체계는 ‘먹통’의 망신을 당했다. 정부와 국민이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는 달리 대북 조문에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도 눈에 띄게 달라진 대목이다.

27살의 풋내기? 당·군 이미 실권 장악


북한의 후계 권력자 김정은의 공식 직함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유일하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ㆍ군ㆍ정의 최고 직함을 동시에 갖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안감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한 지위다. 후계수업 기간이 김 위원장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도 김정은 체제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김정은의 실체는 예상과는 달리 당과 군의 실권을 장악한 김 씨 왕조의 또 다른 군주였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직전인 19일 오전 전군에 “훈련을 중지하고 즉각 소속부대로 복귀하라”는 내용의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하달했고, 북한군은 이 명령에 따라 19일 이후 훈련을 전면 중지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는 김정은이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이미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사는 “북한은 김정일 사망을 발표하기 전 김정은을 지도자로 추인하는 절차를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정은의 이름으로 전군에 첫 번째 명령을 하달한 것은 이런 절차가 있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이 장악한 중앙군사위원회가 사실상의 북한 내 계엄사령부 역할을 하면서 과거 김 위원장의 권력기반인 국방위원회에 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존 커비 대변인은 “한ㆍ미 양국군이 김정일 사후에 대비해 북한 내부의 동향을 주시하며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면서 “김 위원장 사후 그의 아들인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3대세습 안된다고? 美·中 앞다퉈 인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외신들은 북ㆍ미 대화 잠정 중단 가능성을 긴급 타진했다. AP통신은 18일(이하 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사망에 따라 미국이 북한과의 추가 대화를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중국과 서방국이 3대세습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예측은 단 하루 만에 빗나갔다.

미국 국무부는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인 19일 북ㆍ미 실무진 협의체인 ‘뉴욕채널’을 재가동,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된 실무 수준의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이 국가적 애도기간임을 감안하면 이번 회동은 실무 논의 차원을 넘어 미국의 한반도 안정 메시지와 북한의 입장 표명이 상호 교환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북ㆍ미 접촉이 이뤄진 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조의 성명에서 ‘북한의 뉴리더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백악관도 21일 “김정일은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고, 현 시점에서 변화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김정은 체제를 공식 인정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핵 통제권’을 틀어쥔 김정은을 마냥 멀리 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북ㆍ미 접촉은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려는 김정은의 판단과 용인하에 치밀하게 사전 준비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답변을 받아낸 김정은이 미국 정부와의 사전 논의를 통해 세습을 둘러싼 잡음을 없애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북한의 애도기간이 끝난 직후부터 다시 6자회담에 대한 동력이 살아나 이르면 내년 초에 회담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외교가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정보통 국정원? 대북 정보 사실상 ‘먹통’


예산 1조원을 쓰는 국가정보원의 정보 실상은 일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동네 정보원’ 수준에 불과했다. 적어도 대북 정보에 관한 한 그랬다.

특히 남북 대치의 긴박한 상황에서 국가 최고 정보수장의 입에서 “북한방송 보고 알았다”는 답변이 나온 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 연평도 포격 당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당국 간 정보 불통 문제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정보 먹통의 원인을 비전문가 위주의 왜곡된 인사 문제로 보고, 국정원 교체 요구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정부 출범 전 소위 대북 휴민트(대북 인적정보) 체제가 와해됐다” 며 “이들이 이명박 음해세력이었다는 이유였다”고 적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운동화 상표까지 감시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미국의 정보시스템도 북한 정보에 관해서는 먹통이었다. 미 정보당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사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계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군부의 실상이 어떤지, 핵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등 북한 핵심 사안을 놓고 매파와 비둘기파 간 내부 조율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문 갈등? 민간 조전허용 南南갈등 없었다


지난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당시 국내 정치권은 조문 정국에 휩싸였다. ‘전범’ 김일성에 대한 조문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과 남북관계 개선의 전략적 차원에서 조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지럽게 얽혔고, 정부는 결국 조문 불가 결정을 내렸다. 17년이 흐른 지금,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접한 정부는 일반 예상과는 달리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조의를 표하고 정부 차원은 아니더라도 민간 차원의 조전과 이희호 여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도 허용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모든 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을 압도하고 있고 북측의 불안요인이 산적한 상황에서 명분만 앞세워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면서 “김일성 사망 당시의 긴장관계가 재현돼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학습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러시? 北 주민들 차분한 애도물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돌연사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은 애도의 물결 속에 눈에 띄는 동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해외 체류민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고 외국인의 통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을 뿐, 북한 군은 물론 주민들도 특별한 이상징후 없이 차분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북 주민들과 전화 접촉을 한 대북 소식통은 22일 “ ‘일 없습네다’는 답변이 많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어느 정도 이뤄진 측면도 있고 과거보다 최고권력자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져 무관심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며 “이들에게는 김정일 사망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북한이 공식 애도기간이기 때문에 상황을 속단하기 이르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김 위원장 사망→북한 내부 극심한 동요→주민 탈북 러시’ 사태가 현실화할지 여부는 적어도 2~3개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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