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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 목욕탕이 사라진다...10년새 1100곳 문닫아
주5일제가 시행되기 전이다. 먼동이 트지도 않은 일요일 새벽 아버지가 아들을 흔들어 깨운다. “타올 챙겨라”하는 한 마디에 아들은 오만상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화장실 서랍장 한구석에 박혀 있던 ‘이태리 타올’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아버지는 토요일 오후에 퇴근해서는 목욕탕을 찾지 않았다. 

불문율처럼 꼭 일요일 새벽 시간, 바로 목욕탕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췄다. “새로 받은 물로 씻어야 기분이 개운하지” 두 부자는 그렇게 부스스한 모습으로 슬리퍼를 끌고 동네 목욕탕으로 향한다. 아들은 아직 사춘기를 지나지 않았다. 아직 아버지를 따라다니지만 조금만 머리가 굵어지면 자신이 아닌 친구들과 목욕탕을 다닐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매주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이 부자의 새벽 외출은 감행된다. 아들은 온탕에 들어가며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탄성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 등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때를 밀어도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무료 때밀이 봉사를 하는 것 같지만, 목욕이 끝나고 사주는 바나나우유 하나만 기다리며 꾸~욱 참는다.

부자지간, 모녀지간(또는 부녀지간, 모자지간) 살을 맞대며 정서적 관계를 돈독히 해주던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업주들은 ‘IMF’를 기준으로 얘기한다. “IMF 이후로 지난 10년 동안 유가가 300% 이상 오르면서 유지가 어렵다”고. 한국목욕중앙회에 따르면 IMF 당시 2300여 곳이던 대중탕이 현재 1200여개로 절반 정도 줄었다. 

예전같으면 동네 사거리 모퉁이에서 이발소 간판과 함께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터. 이제는 대중탕을 찾으려면 동네 한바퀴를 돌아도 쉽지 않다. 우선 목욕문화의 변화를 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주거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목욕탕이란 개념도 없었다. 일반 주택에는 수세식 화장실 옆이나 세탁기 옆에서 간신히 몸을 씻는 정도였다. 그러니 날을 잡아 대중탕을 찾았다. 탕속에서 십여분 때를 불리고 살이 벌겋게 달아올라 벗겨질 정도로 때를 밀었다. 그러나 목욕문화가 탕문화에서 샤워문화로 바뀌면서 목욕탕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었다. 게다가 무한경쟁으로 대형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초라하기만 한 동네목욕탕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대형스포츠센터는 최첨단 사우나를 설치하고 시민들을 끌어 가는 상황. 


김수철 한국목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일본의 예를 들었다. 김 사무총장은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도 목욕사업이 사양산업이기는 하지만, 거리제한을 두고 목욕탕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기존 목욕탕이 있으면 주택가의 경우 300m 이내, 상업지구는 200m 이내에 새로운 목욕탕을 설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논란으로 인해 자영업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동네목욕탕의 상권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 대책이 없다. 중앙회 차원에서는 최소한 거리제한이라도 둘 것을 입법청원할 계획이지만, 규제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추세 속에서 입법화는 소원해 보인다.

슬리퍼 끌고 감지 않은 머리 그대로 찾았던 동네 대중탕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일까. 가족, 친구, 사람간의 유대를 형성해 주던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는 모습에서 해체돼 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이태형 기자 @vmfhapxpdntm>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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