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가 전세계 경제에 ‘파멸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demisa)’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보다 더 심한 불황의 조짐이 엄습한다. 독일 국채가 시장에서 외면받고, 미국ㆍ프랑스ㆍ일본의 신용등급이 강등 압박에 시달리는 게 강력한 증거다. 세계의 ‘성장엔진’ 중국 경제도 빨간불이 켜진 건 더욱 심각하다. 벼랑 끝에 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구할 즉각적인 조치(유로본드 발행등)도 난망해 공멸의 그림자가 전세계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유럽발 위기, 세계를 집어삼킨다=24일(현지시간) 호주 4대 시중은행인 커먼웰스의 랄프 노리스 최고경영자는 “세계는 이미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는 전날 독일의 국채 발행(60억 유로)이 사실상 실패한 것을 두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실질적으로 경색돼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위기로 자금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된 탓에 전세계 금융계가 자금 조달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는 얘기다. 호주의 ANZ은행 책임 이코노미스트 워런 호건도 “호주를 포함한 유럽 이외의 국가들이 돈을 끌어오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유럽을 짓누르고 있는 긴축 재정의 압박이 전세계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인터넷판에서 “유럽 전체가 재정 운용을 엄격히 하면서 기업이 도산하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며 “내년엔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고, 그 결과 긴축재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탈출을 위해선 긴축재정이 필요하지만, 결과적으론 경기침체를 가져오고 이에 따른 영향은 유럽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급속히 전파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중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한다. 중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중국이 20년만에 처음으로 당장 내년에 무역적자를 낼 수 있다고 예측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중국이 유럽 재정위기로 무역적자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수출의 20%를 소화하는 유럽의 재정난과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광둥(廣東)의 수출중심지인 둥관(東莞)에서는 최근 10개월간 중소기업 약 450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유럽 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미국도 지난 23일 발표된 제조업과 소비, 고용지표가 모두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 경기회복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도 글로벌 동반 경기침체의 우려를 키운다.
▶시장과 반대로 가는 ‘벼랑 끝 전술’=위기를 촉발한 것도 문제 해결의 키를 쥔 쪽도 유럽이지만, 역내 최대부자국인 독일의 반대로 유로본드 발행이 지연되는 걸 시장은 우려한다. 유로본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내 재정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조치로 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의 이날 3자 회동은 유로본드 발행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시장은 크게 실망했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10년물)은 또 다시 위험 수준인 7%를 돌파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100지수는 9일 연속 미끄러졌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본드 발행은 유로존의 금리를 즉각적으로 통리한다는 점에서도 완전히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버티고 있다. 이에 더해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 금융정책과 통화안정을 위해 어떠한 조치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ECB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투자자들의 요구와 상치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메르켈 총리가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며 “(유로본드 발행에 대한) 선택을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박영서ㆍ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