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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키 "내 글의 출발은 음악"
하루키 신작-잡문과 복주머니 사이

‘잡문’과 ‘복주머니’ 사이. 최근 나온 하루키 책을 읽으려는 이들은 이 두 단어 속에서 서성이지 않을까 싶다. 책은 이런 저런 글들을 함께 모은 말 그대로 <잡문집>(비채. 2011)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복주머니’론을 꺼낸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

그렇다. 어떤 이에겐 잡문이 될 수 있고, 다른 이에겐 귀한 문집이 될 수 있겠다. 후자 쪽을 뒷받침 하는 내용은 하루키가 소설가로서 성공하게 되기까지의 여러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그렇듯 하루키 역시 지금의 반석위에 거저 올라서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꿈이 있던 젊은날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책을 통해 이십대 초에 갓 결혼했을 무렵, 돈이 없어서 난로 한 대도 살 수가 없었던 시절, 그로 인해 부엌이 땡땡 얼어붙던 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본문중)

소설을 쓰게 된 동기도 등장한다. 그는 나이 스물아홉에 난데없이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도스토엡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었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런데 대체 뭘 어떻게 써야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소설을 써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 문체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그때는 ‘혹시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멋진 일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본문 중)

독특하게도 그를 소설로 이끈 건 음악이었다. 그는 음악처럼 소설을 쓰고자 했다. 그의 소설이 왜 물처럼 유려하게 흐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덕에 악보를 읽고 간단한 곡 정도는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나의 음악 같은 것이 강렬하고 풍성하게 소용돌이치는 느낌을 받을 때가 곧잘 있었다. 그런 느낌을 어떻게든 문장이란 형태로 옮겨낼 수는 없을까. 내 글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본문 중)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최소 두 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그가 먹은 책이란 음식들 그리고 그가 받은 영감들. 하루키가 친근하게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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