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지난 50여년간 가슴에 품었던 ‘못 배운 한(恨)’ 때문이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면서 아버지가 실직하고 그만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며 “결혼하고 1남 3녀를 낳고 더 이상 공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배움의 기회는 없어지는 듯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이씨의 인생은 지난 2007년 달라졌다. 그해 10월 우연히 만학도 주부를 위한 학교인 일성여중고 이야기를 듣고, 다음 해 3월 입학했다.
이씨는 당시 입학식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감격에 겨웠어요. 못배워서 받았던 설움, 영어 앞에서 까막눈이 됐던 부끄러움, 여러 기억이 흘러가더라고요. 이젠 ‘설움의 세월도 끝이구나’ 싶었죠.”
일흔을 바라보는 ‘늦깎이 여중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등교 시간이 오전 9시지만, 이씨는 오전 8시 10분까지 왔다. 정리한 노트를 미리 보기도 하고, 교실 정리도 도맡아 했다. 방과 후 1시간동안 복습, 새벽 4시 기상해 1시간동안 예습을 매일 잊지 않았다. 조현분 담임교사는 “(이씨는) 학교 성적도 중상위권이었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히 강했다”며 “다른 학생들이 보고 배울만큼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씨가 좋아했던 과목은 한문. 학교 다니는 동안 각종 한자능력시험에서 급수를 땄다. ‘한자 읽기’ 부문에서 6급부터 특2급까지, ‘사자성어’도 중1과정부터 교과서외 과정까지 공부했다. ‘중국어 간체자’도 900자를 암기고, ‘한자활용’도 6급부터 1급까지 취득했다. “한자 4관왕”이라며 학교에서 상도 받았다.
이씨는 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대학 입학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까지만 생각했는데 내일 수능까지 치게 됐다”면서“자꾸 공부하다보니 조금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의지를 다졌다.
가족들은 이씨가 “공부를 계속 한다”고 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는 “남편의 지원이 가장 고마웠다. 반찬이 모자라도 투정도 안하고 시험 칠 때면 대신 장도 봐 줬다”며 “‘대학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주춤하고 있을때 남편은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두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이씨는 유치원 교사가 되는게 목표다. 숭의여대 가족복지과 수시2차 모집에 원서를 낸 상태다. 그는 “졸업 후 나온 자격증으로 큰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며 웃었다.
이씨는 인터뷰 말미에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학교 가는 길에 골목길이 있어요. 그 길을 지나가면 중고생 같아 보이는 아이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가끔 보곤 해요. 그럴때면 가서 좋게 타일러요. ‘못 배운 50년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아느냐. 칠십이 넘은 나도 이렇게 하는데. 마음을 다져라’라고.”
<박병국 기자 @gooo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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