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졸업이 두려운 로스쿨생
1년에 2000만원 넘는 학비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눈앞엔 좁은 취업문

1학년때부터 로펌인턴에 사활

그나마 10명중 7명은 SKY 출신


내년 채용규모 500여명 안팎

상위 10대 로펌은 많아야 150명

지방대 출신엔 갈수록 ‘좁은문’

6개월 실무 못 채우면 고스란히 실업자로



“‘졸업하면 뭐하는 거니’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할 말이 없어요. ‘고학력 백수’라는 말이 실감나네요.”



서울 시내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3학년에 다니는 정모(31)씨는 내년 1월에 치러지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취업 생각을 하면 공부가 손에 잘 안 잡힐 정도다. 우수한 학교성적을 유지하며 공공기관 취업을 목표로 준비해왔지만 아직 채용계획조차 확실하게 나오지 않아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로펌에 아직 취업하지 못한 동료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내년 3월 로스쿨 1기 졸업생 중 1000여명이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사회로 배출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로스쿨 1기생들의 취업고민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가까워진 졸업, 커지는 취업고민=서울의 한 로스쿨에 다니는 이모(32ㆍ3학년)씨는 지난주 학교에서 열린 공공기관 취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었다. 이씨는 “3학년 1학기까지 로펌 채용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아직 취업을 못한 이들은 답답한 상태”라며 “내년에 나올 공공기관, 기업들의 채용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다양한 기회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탓에 9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1층 리셉션홀에서 열리는 로스쿨 취업박람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높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기업법무협회 등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전체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하는 첫번째 대규모 취업설명회로 기업ㆍ로펌ㆍ공공기관이 참여한다.

이씨는 “취업박람회에서 실제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가능성만 열어둔 상태지만 그래도 현장면접을 기대하며 자기소개서를 준비한 동료들이 많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로펌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1학년 때부터 로펌 인턴에 사활을 건다. 그러나 인턴 자리를 얻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에 따르면 25개 로스쿨 중 아주대와 인하대를 제외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현재까지 8대 국내 주요 로펌에서 실무수습을 거친 로스쿨생의 10명 중 7명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로스쿨’ 출신이었다.

인턴을 하는 동안 경쟁도 치열하다. 서울의 한 로스쿨 2학년생인 김모(34)씨는 “인턴기간 동안 과제를 하기 위해 밤을 새고, 알아서 주7일 근무는 기본으로 하는 분위기”라며 “지난 여름 로펌 인턴을 한 동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3주’였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좁은 취업문…학교별 온도차 뚜렷=로스쿨 졸업생 대량실업 사태가 예견되는 것은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검찰, 로펌업계 등의 로스쿨 졸업생 채용규모는 50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로스쿨 1기 졸업 예정자 2000여명 가운데 1월에 있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이 1500명인 점에 비춰보면 3명 중 1명만 취업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업계 상위 10대 로펌은 로스쿨 1기생 중 120~150명 정도를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기준으로 하면 10분의 1 수준인 좁은 문이다. 그러나 이 좁은 문은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아예 바늘구멍이 되기도 한다. 현재 로펌과 채용계약을 맺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일명 ‘SKY 로스쿨’ 출신이다.

로스쿨생들 사이에서는 ‘SKY’ 밑으로 내려가면 취업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령 정원이 150명인 서울대 로스쿨은 1기생 중 50여명이 이미 로펌에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SKY’가 아닌 서울 시내 한 유명 사립대학은 현재까지 로펌 채용이 3명에 그쳤다. 이는 서울대 로스쿨생들이 하나의 대형로펌에 취업하는 수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지방 로스쿨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10대 로펌 채용예정자 중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불과 3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의 로스쿨에 다니는 이모씨(28ㆍ2학년)는 지난 여름방학 서울의 한 로펌에서 인턴을 했다. 그는 “서울에 오니까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며 “지방은 로펌이 설명회하러 오는 경우도 거의 없어 기회 자체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대학 로스쿨은 학교나 학생회 차원에서 취업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채용인원 자체가 워낙 한정적이다 보니 해결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내년 3월 이후가 두려운 로스쿨생=내년 3월 변호사 시험 합격자가 발표되고 나면 6개월간의 실무연수가 발등의 불이다. 변호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더라도 6개월 이상 법원·검찰, 경찰청, 법무법인 등에서 법률사무에 종사하거나 연수를 받아야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로펌이나 기업 등에 취직하지 못한 미취업 합격자들의 연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도 받지 못한 변협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김모(34ㆍ2학년)씨는 “미국의 경우 변호사를 가장 많이 고용하는 곳이 미국연방정부인데, 우리는 로스쿨 제도를 만들기만 하고 이후의 일에 대해선 정책적으로 준비된 것이 없다”며 “일례로 준법감시인 제도 도입이 무산됐지만 이러한 제도들을 통해 변호사의 활용을 늘리고 로스쿨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 법치주의가 실현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법원은 내년 로스쿨 졸업생 중 일선법원의 업무를 보조할 재판연구원(로클럭ㆍlaw clerk)은 100명 선발예정이고, 검찰 로클럭은 검토 중이지만 내년 도입은 힘든 실정이다. 사법연수원생과 같은 경쟁을 거쳐 뽑는 신규검사 임용에 지원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120명 수준에 그친다.

로스쿨생 취업 문제는 비단 내년에 배출되는 1기생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1기생들의 취업고민을 지켜보는 2기생들은 내후년에 닥칠 문제를 미리 보는 듯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올해 상반기인 2학년 1학기부터 로펌에 취업하는 동료들이 속속 생기면서 로스쿨생들의 초조함은 알게 모르게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씨는 “로스쿨에는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장밋빛’ 기대를 가지고 온 이들이 많은데, 정작 그전 직장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다시 사회로 나가게 될 처지가 되고 보니 우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며 “제도를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할 텐데 현 상태라면 실업자만 만들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오연주 기자 @juhalo13>
/ o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