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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접점 못찾는 한·미FTA>고성·몸싸움 그리고 쓰레기…그 곳엔 의회주의가 없었다
“예산심의 끝날때까지 연기”

남경필·김동철 ‘막걸리약속’

야당의원들 겨우 해산


여야 충돌 임시 봉합

3년전 해머사건 악몽 우려도



1일 오전 10시35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 여당 의원들이 들어갔다. 통일부 및 산하기관 예산 심의 회의가 당초 예정시간보다 30여분 늦게 시작된 것이다.

앞서 9시45분 남경필 위원장이 국회의사당 본관 4층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 나타났다. 남 위원장은 “어제 저녁 신경질나서 야당 측 김동철 간사와 막걸리 먹고 뻗었어요. 예산 심의 끝날 때까진 한ㆍ미 FTA 안 하기로 했어요. 이제 비켜 주세요”하며 야당 의원들의 퇴장을 요구했다. 

민주당 등 야권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빌미로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아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파행을 겪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1일 비준안 기습처리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전날부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실을 점거, 밤샘 농성을 벌였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예산안 처리가 끝나는 시점을 놓고 또다시 말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오늘과 내일까지 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요구했지만, 남 위원장은 “저한테도 룸(운신의 폭)을 달라. 그 사이 여야 원내대표가 협의할 텐데”라며 “일단 오늘은 아니다”라고만 되풀이했다. 막걸리 약속의 야당 측 증인인 김동철 간사까지 나서 설득의 설득을 거듭한 끝에 간신히 회의장 문을 열 수 있었다.

새벽 6시30분 국회의사당 본관 4층은 고요했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굳게 잠겨있었다. 위원장실에서 회의장으로 이어진 문 앞에는 의자가 겹겹이 놓여 있어 손잡이조차 잡기 힘들었다. “국민주권 포기서민ㆍ서민생활 위협ㆍ양극화 반대, 졸솔적인 한ㆍ미 FTA 강행처리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린 회의장 안에서는 야당 의원 3~4명이 자고 있었고, 회의장 문앞을 지키고 앉아있는 불침번 당직자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아침 청소를 위해 오가는 아주머니를 바라볼 뿐이다.

대회의장 앞 시멘트 복도 바닥에는 이불 한장 펴놓고 잠든 몇몇 야당 당직자들의 코고는 소리가 간혹 들렸다. 그 옆 먹다남은 간식거리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와 복도 한 쪽 쌓인 쓰레기더미, 그리고 몇몇 방송사에서 만들어놓은 임시 부스와 조명 장비에서는 여야의 몸싸움이 이제 시작임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이 가신 7시30분 외통위원장 접견실에서는 인사말과 함께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날 회의장을 점거한 채 잠들었던 ‘야간조’ 의원들과 ‘아침조’ 의원들의 교대식이다. 모처럼만의 밤샘 점거와 몸싸움에 다소 흥분된 듯한 표정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서로의 조 편성 상황을 물어보면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밤샘 점거를 마치고 떠나는 의원들 옆에서 몇몇 당직자들이 식은 김밥을 먹으며 뉴스가 흘러나오는 TV를 무표정하게 보고 있었다.

이틀째 접어든 한ㆍ미 FTA 비준에 관한 여야의 대치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예산안부터 처리하자”며 야당의 점거농성 중단을 요구했지만, 야당은 “기습처리가 의심스럽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본회의가 열릴 3일까지는 어제처럼 조를 짜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역시 이날 오전부터 외통위 소속 의원들을 대기토록 하는 등 비준안 처리에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이 같은 양당의 극한 대립은 결국 지난달 31일 저녁, 몸싸움을 불러오고 말았다. 한시간가량 계속된 1차 충돌 중 국회 경위 한 명이 동료의 부축을 받고 긴급하게 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국회의원들과 당직자, 그리고 취재진들로 아수라장이 된 외통위장 몸싸움이 결국 피를 보고 만 것이다.

하지만 첫날의 싸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합의를 뒤집은 야당을 비판하는 남 위원장 옆에서는 “우~우 물러가라” 같은 야당 당직자들의 방해 소리가 들렸고, 남 위원장이 떠난 뒤에는 “민주당은 비겁하다” “언론 플레이하지 마” 식의 유치한 말싸움도 이어졌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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