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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감 현미경 속 2011 대한민국의 일탈...주인을 핍박하는 종(公僕), 전도된 질서
20세기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정해진 영역 또는 본래 목적이나 사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탈(deviance)’은 무규범상태 즉 아노미(anomie:혼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연구를 거듭해 오늘날 사회학자들은 일탈의 원인으로 ▷가정과 제도 등 사회적 환경 ▷부정적 감정과 충동성 감각추구 성향 ▷이득과 손실의 인지 등으로 정리한다.

2011년 대한민국엔 숱한 일탈 행위가 뒤덮고 있다. 청와대 간부들이 줄줄이 ‘검은 돈’ 때문에 쇠고랑을 차고,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해 끝내 세상을 떠난 대학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허리띠를 졸라맨 영세상인들은 유통 대기업 보다 비싼 카드 수수료를 견디지 못해 잠실운동장을 점령(occupy)했고, 말 못하는 장애인을 성추행한 사회복지법인 관계자의 만행은 온 국민을 분노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아름다운 구석이 왜 없겠냐 마는, 말로만 듣던 2011년 대한민국의 일탈은 올 국정감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국감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있어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추수이다. 선량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만큼,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현미경을 들이댔더니, 우리 사회 전반의 일탈행위가 제도운영, 의식, 도덕의 혼돈 속에서 빚어진, 자못 ‘구조적’인 것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불안한 사회= 박상은 의원은 최근 5년간 회수명령을 받은 불량약품 950건 중 522건은 회수실적이 전혀 없어, 유통량을 계산해봤더니, 국민 10명중 9명이 불량 약품을 복용했다고 꼬집었다. 올들어 40여차례의 고장을 일으킨 KTX가 고장이 나도 124품목 2만4850개의 부품이 부족해 고칠 수 없다는 안홍준 의원의 고발은 “고속철 수출”운운했던 당국자들을 무색케 한다.

정신이상 상태의 살인, 강간 범죄자가 매년 2000명에 달한다는 유정현 의원의 지적과 불황기를 틈다 다시 창궐하고 있는 조직폭력배가 전국 220개조직에 5451명이라는 윤상일 의원의 통계는 대체 우리사회의 안전망이 어느 수준인지를 예측하게 한다. 김성태의원은 비행기 조차 음주운항에 노출돼 있다고 개탄해했다. 최근 2년간 항공종사자의 음주 506건, 마약 70건 적발을 했다는 것이다.


식약청이 인터넷 불법 의약품을 적발했음에도 방통위 등이 제대로 차단 방책을 마련하지 않아, 적발된 10곳 중 6곳은 버젓이 불법유통사이트를 운영중이라는 최영희 의원의 질타는 일을 매조지할줄 모르는 방만한 우리 행정의 일단을 보여준다.

음란물의 범람은 이 나라가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으로 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수많은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단돈 100~200원이면 음란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다운받을수 있도록 돼 있음에도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 유정복 의원은 이른바 전통적인 사창가가 위축되자 키스방, 유리방, 룸카페, 인터넷 만남사이트, 스폰사이트 등 신(新)변종업소가 활개를 쳐 지난해에는 103명을 적발했지만 올들어서는 9월말까지 이미 작년의 6배를 넘는 637명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불건전 만남 사이트 시정요구도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3배이상 늘었다.


김창수 의원은 ‘방통위는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는가’라고 질타하면서 ‘개인 방송’에 대한 음란, 선정, 폭력 심의가 전무하며, 음란,선정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안드로이드 마켓 572개, 앱스토어 2572개가 유통중인데도 실효성 있는 단속이 없다고 개탄해했다.

RFID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천안함 폭침, 제주해군고속정 침몰 때 장병들을 찾지못했던 뼈아픈 상처를 잊은채, 부랴부랴 고양이 오줌 만한 저예산을 투입해 허름한 RFID 구명조끼를 해외에서 고생하는 청해부대원에게 입혔지만, 성능실험 결과 통달거리가 모자라 익수자 탐지에 실패했다는 정미경 의원의 지적에 고국의 가족은 애를 태웠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다리가 16곳, 댐이 15곳, 건축물이 8곳이라는 김성태 의원의 지적과 국민 1800만명이 당국의 재난문자를 받아보지 못한다는 문학진의원의 질타, 북한에 억류중인 국민 4명의 행방이 19개월째 오리무중이라는 박주선 의원의 고발은 당국이 얼마나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얌체 부자들이 활개치는 사이 사회적 약자들은 멍들고...= 사회 불안, 행정 헛발길 속에서 얌체들은 활개를 쳤고 서민과 약자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권선택 의원은 서민을 위한다는 보금자리주택 1~3차 지구 당첨자 중 221명이 외제차를 소유한 부자라는 사실을 폭로했으며, 안홍준 의원은 90평짜리 집있는 사람도 임대주택 버젓이 입주하고 1살짜리 임대사업자가 있는가 하면, 젖병을 물고 있을 0~1세가 청약통장에 가입하는 등 아파트 부적격당첨자가 1만여세대나 있다면서 당국의 부실관리를 질타했다.

거액의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2만여세대(5만여명 추산)가 버젓이 병원을 3년간 700만번이나 이용토록 방치하는 바람에 샐러리맨 등의 낸 피 같은 보험료 1726억원이 낭비됐다는 전현희 의원의 지적, 주요은행들이 CD 및 ATM기로만 수수료를 3년간 7800억이나 거둬들였다는 이범래의원의 폭로, 디지털시대에 어리숙한 노인들을 상대로 ‘실버폰’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휴대폰보다 비싸게 판다는 이경재 의원의 개탄 앞에서 서민과 약자들은 한숨지어야 했다.


매서운 바닷바람과 생활고에 시름하고 있는 232개 도서지역은 의료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는 박상은 의원의 지적 역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우리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정선 의원은 정부인건비 지원이 중단되자마자 사회적기업 근로자 3분의1이 해고당했다며 사회적기업제도의 생색내기 행태를 고발했다. 이정현의원은 인권침해사건의 일반인 구속률은 57.1%인데 공무원 구속률 36.8%라면서 서민에 인색한 수사기관의 형평성 문제를 꼬집었다.

최영희 의원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원에 의한 아동학대 발생률이 전년대비 3.5배 증가하고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 등 시설종사자에 의한 아동학대도 2년새 2.6배 늘었다고 폭로하자, 당국은 부랴부랴 뒷북 진상조사에 나선 상태다. 아동,청소년 상대 성범죄자 전자발찌명령 절반을 기각하는 사법부의 자세 역시 사회적 약자를 울리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이정현의원의 지적도 ‘도가니 사태’와 맞물려 공분을 자아냈다.

청년은 여전히 봉이었다. 이범래 의원은 부모가 서민인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제1금융권 조차 신용점수를 낮추고, 제2금융권 대출의 경우 청년의 신용등급을 100% 깎아 사회진출 첫발부터 불이익을 준다고 지적했다.

홍영표 의원은 청년고용에 앞장서야할 고용노동부의 산하기관이 지난3년간 청년채용률 1.26%을 기록해 의무고용률(3%) 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개탄해 했고, 이종혁 의원은 정부가 취업난속에 청년창업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지난해 청년 CEO의 벤처 창업은 벤처붐이 꺼진 2002년(48.5%)보다 크게 낮은 19.3%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지난 2008년 4월부터 올 8월말까지 3년 4개월간 428회에 걸쳐 서울시내 최고급호텔에서 내부 직원 및 외부인사 간담회를 갖고 모두 밥값과 차(茶)값으로만 1억247만원을 사용했다는 소식(김창수 의원)은 청년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여풍’, ‘여풍’ 하지만 여성의 불편은 여전했다. 최근 외무고시 합격자의 여성비율은 절반을 넘은지 오래됐고, 60%를 넘어서고 있는데, 여성외교관 160명 중 3급 이상 공무원은 5명 뿐이었다.(박선영 의원)

▶한심한 공직, 엉터리 행정= “인권침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검경의 심야조사가 급증하고(우윤근 의원), 3조원이던 서울시 금고가 4000억원으로 줄고 한해 이자만 7737억원을 낼 정도로 빚은 많아졌으며(이윤석 의원), 실적에만 급급해 중소기업 지원실적을 부풀리는(나성린 의원) 사이, 공직자들은 국민의 종(공복:公僕)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상전’ 행세를 하며 온갖 특혜를 누렸다.

MB정부 3년간 참여정부 3년에 비해 비위면직자가 123% 증가했다는 유원일 의원의 지적 속에, 서민의 세금을 악착같이 받아내던 공무원들이 5년간 1조4000억원 이상의 소득세를 미납한 사실(이정희 의원)까지 밝혀져 국민적 분노를 샀다.

수출입은행은 최근 5년간 57억 67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지급(이용섭 의원)했고, 한국 마사회는 직원의 직계 비속을 알바로 채용하는 ‘직장 대물림’을 시도(성윤환 의원)하다 철퇴를 맞았다.

경찰관 20명이 평일에 불법으로 카지노에 출입하고(이석현 의원), 군 간부 인성검사 결과 10%가 정신이상이며(김옥이 의원), 진급로비 의혹 헌병장교 투서, 직속상관 음해 해병대 장성 구속, 육군 항공작전 사령관의 군인복지기금 횡령, 전 해군총장 공금유용 의혹, 현역 준장과 예비역 준장 폭행사건 등 군 장성이 기강 해이를 주도했다는 사실(정세균 의원)이 드러나자, 군경에 육두문자까지 내뱉는 시민도 있었다.

관세청 직원은 영화를 다운로드 받다 자료를 유출했고(이종걸 의원), 대한체육회에 성폭력 신고 사례 접수가 폭증하고 있으며(전혜숙 의원), 고용노동부는 산하기관 1급 이상 신규채용자 4명 중 1명은 한나라당 출신으로 채우는(홍영표 의원) 꼼수를 부려 국민을 실망시켰다.

▶달라진 세태= 막걸리의 세계적 인기속에 일본에서는 유사품 ‘맛코리’(マッコリ)’를 내세워 세계시장 잠식을 노리고 있으며(박민식 의원), 남한으로 온 뒤 일감을 찾다 찾다 못찾은 탈북자들이 영농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박선영 의원)는 소식도 국감을 통해 들려왔다. 웰빙 붐과 함께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부상도 잇따라, 생활체육 참가자의 85%가 부상을 경험했으며, 스포츠 사고는 2005년 1452건, 2006년 1795건, 2007년 2367건, 2008년 2532건, 2009년 3172건으로 증가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심재철 의원)도 나왔다.

고령화사회로의 급진전 속에 장윤석 의원은 고령운전자의 사고가 5년 동안 77% 늘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전현희 의원은 돈없고 힘없는 노인에 대한 학대가 최근 3년간 3배 늘고 신체학대는 2배나 늘었으며 학대 가해자중 73%가 직계비속이라고 밝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한구 의원은 “지금 시대는 개발과 건설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살피는 일을 요구하고 있다. 탈이념과 불편부당, 공정의 기반 속에서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정책들을 세심히 찾아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의 최고 덕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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