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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한국정치, 점령시위 당해봐야 꿈에서 깰까
1% 독식 사회에 99% 분노

혁명 일보직전 구조적 모순

철면피 같은 기성정치

네거티브 선거전에만 몰두




“그들은 우리를 사회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고 해도 2008년 금융시장 붕괴 당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뉴욕에서 벌어진 점령시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그들’은 1%이고, ‘우리’는 99%이다. 그의 연설문은 페이스북 등 SNS를 타고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주말 전 세계 700여 도시에서 동시에 점령시위가 벌어졌다. 1%만이 독식하는 사회에 대한 99% 루저들의 불만이 좌절로, 그 좌절이 분노로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사다리를 탈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점령시위의 본격 상륙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열 중 일곱은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는 희망 없는 대졸자들, 똑같이 일하고도 월급은 반밖에 못 받는 870만 비정규직의 좌절감과 분노는 임계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가열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실패, 그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체제와 리더십을 모색하는 거대 담론이 진행 중인 지금, 선거전이 한창이다. 1000만 주민ㆍ1000만 일자리ㆍ대한민국 경제의 40%가 집중된 수도 서울의 시장을 뽑는 선거는 대권주자들이 총출동한 대선 전초전이다. 특히 집권정당과 시민단체의 대결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데다, 기성 체제와 질서에 대한 분노를 한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전 세계 시선이 집중된 선거이기도 하다. 제 구실을 못한 기성정치가 혁명 일보직전의 구조적 모순을 점진적 개혁으로 흡수하느냐, 아니면 시민사회세력이 대안세력으로 선택받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양극화ㆍ빈부격차, 중산층 몰락 등 세기적(世紀的)ㆍ국제적 모순에 ‘맛보기 논쟁’이라도 한판 벌여봐야 한다. 구관이 명관인지, 시민세력이 대안이 되는지 생각의 실마리조차 제시되지 않는다.

불과 한 달여 전 안철수 바람 앞에서 잔뜩 쪼그라들었던 기성 정치권은 어느새 다시 오만해졌다. 그 뛰어난 자기 복원력이 놀랍다. 철면피적 안하무인은 20년 사회운동 하느라 집 팔아 월세 사는 상대방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정도다. 대통령은 무슨 이유인지 아들 명의로 땅을 사서 아방궁 같은 퇴임 후 사저를 추진했다. 이런 게 그들에게 공정사회다.

개인적으로 양비론을 지극히 싫어하지만, 시민세력에서 시대를 앞서는 개혁의 청사진, 헌신, 참신, 도덕적 우월성을 보지 못한다. 무지개연합에 감동은 없다. 진보는 논쟁에서 승리하고 선거에서 패배하고 일상생활에서 참패한다는 말처럼 믿음이 안 간다. 나경원의 생활정치, 박원순의 희망정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종아리가 당기는 것은 올라가고 있기 때문’(한비야)이라는 청춘 보듬기보다 못한 선거용 수사(修辭)로 들린다. 나경원, 박원순은 오늘도 새벽부터 부친의 사학재단 관련 의혹, 병역ㆍ학력 의혹으로 시작했다. 앵무새들 같다.

지젝은 연설에서 이렇게도 경고했다. “그들은 우리가 꿈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다. 정작 백일몽을 꾸는 이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들 자신이다. 우리는 점점 악몽이 되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계속 꿈을 꾸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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