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신용이 주로 재산과 소득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재산이 적고 연봉이 낮으면 아무리 오랜 고객이라도 신용이 쌓이지 않는다. 게다가 ‘저소득=저신용’의 연결고리는 점점 강해진다.
직장인 A씨는 비록 소득은 낮지만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돈 빌리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로 은행 대출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A씨는 “재산은 많지 않아도 연체한 적이 없는데 신용등급은 전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돈을 더 많이 빌려달라는 게 아니다. 수입이 적어도 오래 신용을 쌓으면 같은 돈이라도 쉽게 빌리고 금리도 낮아져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신용평가회사(CB)는 신용등급 산정 시 재산이나 소득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설명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재산이나 소득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리하기는 매한가지다.
신용평가사들의 주요 잣대는 금융기관과의 거래 실적이다.
신용평가기관인 KCB(코리아 크레디트 뷰로)의 개인신용 평가 기준에 따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금융권 대출 및 신용카드 채무 상태를 보여주는 ‘부채 수준’(35%)이다.
그다음이 ‘연체정보’(25%), 금융회사별 대출이용 사실과 활용비율을 보여주는 ‘신용형태’(24%), ‘신용거래기간(16%)이 뒤를 잇는다.
부채 수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소득에 비해 과다하게 대출받았는지가 신용등급 하락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저소득자는 대출을 조금만 초과해 받아도 소득에 비해 많은 대출로 판단된다. 사실상 소득이 간접적으로 적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소득이 낮아도 신용도는 높다’는 점을 증명할 만한 정보가 없다. 예컨대 각종 공과금 등을 제때에 납부했다는 실적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련 공공기관에서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매우 민감하지 않은 신용정보는 신용평가사 등에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B의 등급을 참조하는 은행 등 금융권은 한발 더 나아가 재산 및 소득을 감안해 자체적인 등급을 매긴다. 주거래은행 고객에게는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식이다. 여기서도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은행과 CB가 개인의 신용등급을 낮추면 이자를 더 받아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는 우량정보가 오면 정확한 평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데 누가 반기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금융위원회는 개인 신용평가 시스템과 관련해 소비자의 의견이나 제안을 모아 반영하는 별도의 기구 설치를 검토 중이다. 문제가 있다면 소비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를 고치겠다는 취지다.
결국 금융회사 중심의 신용평가 체제가 서민 중심적으로 변화해 패자부활의 기회를 줘야 신용등급이 건전한 신용사회를 만드는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순호 수석연구원은 “연체기록 등 불량정보로 신용등급을 판단하는 네거티브 방식에서, 세금과 공과금 납부 실적을 반영해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남현 기자
airins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