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가 판매가 자율결정
원래가격 몰라 소비자 불신 초래
경쟁 통한 가격 인하효과 무색
물가상승 부작용·담합 의혹도
결국 권장소비자가격으로 ‘U턴’
과자와 라면, 빙과류까지 적용했던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자율경쟁을 통한 가격인하 효과 대신 고물가를 부추긴다는 불신만 남긴 채 1년 만에 폐지됐다. 롯데제과와 오리온, 농심 등 주요 식품업체들은 요즘 지난해 표기했던 권장소비자가격을 다시 표기하는 등 가격표의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리느라 분주하다. 1년 천하로 막을 내린 유통시장의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실태를 진단해 봤다.
▶“이 가격 맞아요?”…신뢰 잃은 가격에 소비자는 ‘찜찜’=소규모 소매점들은 유통업체가 제품의 판매가격을 자율 결정하는 오픈프라이스 제도 때문에 소비자의 불신이 커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후암동 전통시장 근처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는 유모(53ㆍ여)씨는 “손님들이 원래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니까 ‘여기는 왜 이 가격이에요’라며 가격 자체를 의심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오픈프라이스 때문에 마음고생하기는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는 고인식(54)씨는 “상점마다 가격 차이가 많은데, 소비자가 상품의 원가격을 알아야 상품을 믿고 구입하지 않겠냐”며 오픈프라이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슈퍼마켓 사장 김인태(50)씨도 “취급상품이 너무 많아 제품 단가를 외우지 못해 상품을 팔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 “현재 권장소비자가격이 찍힌 제품을 공급받기 위해 예전 생산 제품은 소량만 팔고 있다”며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오픈프라이스? 우린 몰라요”…유통시장 유행어는 ‘몰라요’=출범 1년 만에 퇴장한 오픈프라이스는 물가안정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이 식품업체의 권장소비자가와는 관계 없이 판매가격을 자율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상품 판매가격을 둘러싼 유통업체 간 치열한 눈치작전 때문에 주요 품목의 가격은 동일했고, 가격담합 의심도 샀다. 농심의 ‘신라면’ 5개들이 가격은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세 곳에서 나란히 2920원으로 동일했다. 오리온 ‘초코파이(12개들이)도 나란히 2560원에 팔렸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주변 상권에 자리잡은 경쟁 점포를 의식하다 보니 비슷한 가격을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통업체의 이 같은 가격정책은 오픈프라이스 기간 중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사실상 자율경쟁 유도를 통해 상품 가격을 낮춘다는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용산구 인근 대형마트를 찾은 한 여성 소비자는 “마트마다 싸게 판다고 하지만 어느 선 이하로는 가격이 낮아지지 않는 것 같다”며 “이러한 가격정책은 가격담합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하게 꼬집었다.
▶정부의 섣부른 욕심, 오픈프라이스 절반의 실패 자초=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처음 도입한 지식경제부는 최근 과자와 라면, 빙과, 아이스크림 등 4개 품목을 오픈프라이스에서 제외시켰다. 가격상승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픈프라이스 정책을 추진한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 측은 “애초 1년간의 성과를 지켜본 뒤 제도 시행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는데, 최근 소비자원의 성과 분석 결과 가격 편차가 커지는 등 취지가 맞지 않아 권장소비자가격을 재도입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경부 스스로 물가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자인한 셈이다.
지경부 측은 또 “오픈프라이스가 자리를 잡으려면 소매점에서 가격 표기가 잘돼야 하는데, 소규모 소매점들에 대한 모든 품목에 대한 가격정보 제공은 어려움이 많다”며 “앞으로는 소비자에게 가격정보를 충실히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도현정ㆍ문영규 기자/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