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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일본 3조 시장이 열렸다. K-팝이 커진다
도쿄에 사는 싱글 회사원 나카무라(32) 씨는 금요일 저녁 퇴근길마다 습관처럼 들르는 곳이 있다. 젊음의 거리 시부야역 인근의 쓰타야(Tsutaya) 매장. 이곳은 음반과 영상물 등을 대여해 주는 곳이다. 그런데 동네 대여점 수준이 아니다. 인근 타워레코드에 맞먹는 초대형 숍이다. 나카무라 씨는 여기에서 주말에 즐길 만한 영화 DVD 등을 빌린다. 특히 요즘 빠지지 않고 찾는 코너는 K-팝 섹션. 최근 소녀시대에 푹 빠진 그는 다른 K-팝 아티스트들의 CD를 구경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잘 몰라서 큰 돈 주고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팀들의 앨범은 여기서 싼 가격에 대여해 들어본다. 타워레코드에서 새 앨범 한 장 사려면 2000~3000엔을 줘야 하지만 여기서는 200~300엔이면 빌릴 수 있다.

정규 매장에서 음반 판매량 정도로 추산하는 K-팝 시장 규모에 대한 계산법에 이제 수정이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렌탈(대여) 시장 규모가 판매 시장 규모와 맞먹는 나라가 일본이다. 음반 시장만한 크기의 렌탈 시장이 K-팝 앞에 열려 있다. ‘과녘’이 더 넓어진 것이다.


▶음반 빌려 듣는 나라 일본에만 있는 또 하나의 거대 시장=일본의 렌탈 시장 규모는 우리 돈으로 연간 2000여억엔(3조원)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음반을 빌려주는 대여료가 새 제품 판매가의 5분의 1~10분의 1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사는 앨범보다 빌려 듣는 앨범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판매는 특정 가수들의 골수팬, 다시 말해 ‘콜렉터(collector)’들을 위한 시장이라면, 대여는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리스너(listener)’들을 위한 시장에 가깝다.

음반대여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 음반 시장 자체가 일찌감치 실물 음반보다 음원 시장 위주로 재편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불법 음원 공유나 합법 음원 스트리밍ㆍ다운로드보다는 여전히 실물 음반이 ‘대세’인 일본 음악팬들의 특성이 작용하고 있다.

K-팝은 올해 초, 이 일본 음반 대여 시장에 처음 공식 진출했다. 대여 시장 전체 매출액의 70%를 점유하는 과점 기업인 쓰타야를 통해서다. (쓰타야의 연간 CD, DVD 렌탈 매출액은 1798억엔 수준ㆍ니케이 마케팅저널 2009년 11월호) 쓰타야는 일본 전역에 1400여개 매장을 지닌 초대형 기업이다. 이곳 회원들에게 발급되는 ‘T-카드’ 멤버쉽 회원만 3600만명을 헤아린다. T-카드는 쇼핑, 외식 등 다양한 매장에서 포인트 적립이 가능한 카드인데 우리나라의 OK캐시백에 비견된다. 일본 국민의 4분의 1이 이 카드를 들고 다니며 쓰타야를 방문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지난 1월부터 대여 체인 쓰타야에 K-팝 음반을 공식적으로 독점 공급하고 있는 J&P엔터테인먼트의 박정준 대표는 “음악 마니아만이 아닌 더 넓은 계층이 방문하는 쓰타야에 들어선 K-팝 전문 코너는 일반 음반 매장의 K-팝 섹션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K-인디 소개의 우회로도 확보…K-팝 외연 확장 가능성까지=K-팝 음반들은 쓰타야를 통해 올해 초 카라를 시작으로 아이유, 시스타, 시크릿, 엠블랙 등 대다수의 타이틀들이 순차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전에도 K-팝 음반들이 이곳에 소개됐지만 이른바 나까마(중간 판매상)들에 의한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서였다. 올해부터 공식 루트로 음반이 들어가면서 K-팝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시장 전략 구상과 합리적인 수익 배분을 받게 된 셈이다. 그간 한국 음반들이 대여 시장을 통해 풀리는 시간차도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어마어마한 유통망과 파급력을 지닌 쓰타야를 통해 K-팝의 외연마저 확장될 조짐도 엿보인다. 대여용 K-팝 음반 독점 공급업체인 J&P엔터테인먼트는 쓰타야와 최근 새 계약을 맺고 이달 말부터 국내 인디 음반들도 현지 매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십센치, 브로콜리너마저 등의 27개 타이틀이 일단 쓰타야에 들어간다. 쓰타야는 일부 주요 매장 내에 K-Indie(케이인디ㆍ가칭) 섹션을 별도로 설치하고 진열대의 모니터로 한국 인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틀어 놓는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일본 메이저 채널로는 소개되기 어려웠던 한국 인디 음악이 대여 시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일본 전역에서 막대한 프로모션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준 대표는 “아이돌 위주의 주류 K-팝 외에 다른 한국 음악이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는 면에서 K-팝 한류는 반쪽에 가까웠다”며 “K-팝 섹션을 찾은 일본인들이 자연스레 K-인디를 접하게 되면서 큰 홍보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디 음반들을 독점 공급하게 된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는 “‘쓰타야에 오면 K-팝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데 구미가 당겨 쓰타야 측에서도 한국 인디 음반 공급에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 안에 일본만한 또 다른 시장이 있었다. K-팝의 열도 공략이 새 국면을 맞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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