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에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사법연수원생)
“피고들에게 강도상해죄까지 적용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로스쿨 교수)
14일 오후 9시, 서울 남부지방법원 401호 심문실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기자를 포함해 재판에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9명이 사건 피의자의 유죄여부, 양형 정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번 재판은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피해자와 피해자의 딸을 미행하고 상해를 가한 이모(여ㆍ탈북자)씨 등 피고 4명의 기소혐의 적용여부와 양형정도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피고들은 강도상해죄로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은 10시간 전인 오전 11시에 시작됐지만 그림자배심원단은 이보다 1시간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그림자배심원단의 역할과 사건 개요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그림자배심원단은 배심원단과 달리 사건에 대한 참고자료도 볼 수가 없다. 합의내용이 판사에게 전달돼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배심원단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림자배심원단에게는 사건 관련 자료를 배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심원단과의 차이는 또 있었다. 10명의 배심원들은 법정 왼편에 마련된 배심원석에 앉은 반면, 그림자배심원들은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게 돼있다. 재판은 배심원들과 방청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1시간 가량 판사 및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설명이 있은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곧 신문이 이어졌다.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던 터라 실시간으로 그들의 진술을 받아적으며 머리속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건조한 글이 아닌 감정이 담긴 말로 들으니 사건 이해가 더 수월했다. 피의자, 피해자 등 다양한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피고와 원고 그리고 6명의 증인까지 총 10명의 진술을 듣는데 꼬박 9시간이 걸렸다.
오후 9시, 날은 어두워졌지만 그림자배심원단의 역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재판이 끝나자 그림자배심원단은 재판장 옆 심문실로 이동해 피의자의 양형을 정하는 평의시간을 가졌다. 배심원단의 토의도 같은 시간 다른곳에서 진행됐다. 피고들의 강도상해죄 인정 여부와 양형 정도를 놓고 9명의 그림자배심원단은 열띤 토의를 진행했다.
사법연수생 조 모씨는 “피의자들이 피해자의 딸에 대해서도 똑같이 유죄인지 모르겠다. 딸의 상해 상태가 크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박용철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내가 보기에도 피해자의 딸에 대해서 입증을 검찰이 제대로 못 한 것 같이 보인다. 누가 때렸는지 뚜렷하게 결론이 안나왔다”며 동조하는 의견을 내놨다. 기자도 “피해자 딸이 전치 2주가 나왔다는데 일반인들도 병원가면 그냥 전치 2주 나온다”며 앞선 의견에 찬성했다.
양형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공보판사가 배석해 조언을 해주었다. 양형에 대해서는 사회봉사에서 집행유예, 실형까지, 징역 4개월에서 2년까지 의견이 엇갈렸지만 다수결에 의해 주범인 이씨에게는 징역 1년, 공범 2명에게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키로 결정했다. 기소혐의에 대해서도 강도상해죄에 대해서는 무죄, 공동상해, 공동공갈미수죄는 적용돼야 한다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의 판결은 달랐다. 배심원단은 피고 3명 모두 강도상해죄가 적용된다는 결론을 내놨다.
1시간의 논의가 끝난 뒤에 재개된 재판에서는 판사의 판결이 이어졌다. 재판장은 선고에서 “연약한 여성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는 점 등을 미뤄봤을 때 강도에 준하는 폭행을 행했다고 보여진다”며 피고들에게 강도상해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긋난(?) 판결에 맥이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 참여해 혐의여부를 판단하고 양형정도를 결정해보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은 색다른 경험임이 확실했다. 박용철 교수 역시 “재판부 판결이 그림자배심원단의 결정과 달라 아쉽다”면서 “전반적으로는 국민참여재판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상훈 서울남부지방법원 공보판사는 “그림자배심원제의 결정은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국민들이 직접 재판과정에 참여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재판에 관심이 많은 일반시민은 물론 법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종 토론은 오후 10시를 넘겨 끝났고 판결까지 보고나니 자정 가까이 됐다. 12시간을 넘긴 피말리는 그림자배심원제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날이 바뀌고 있었다.
<손미정 기자 @mona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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