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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기업 파업현장 가보니..공권력 투입 임박...팽팽한 긴장감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공장. 5월의 뜨거운 햇볕보다 더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한 중소기업에 수십 대의 취재 차량이 몰려들고, 전경과 노조원, 비노조원, 금속노조가 가쁜 숨과 고성을 내지르며 엉켜 있는 곳이다. 누가 이런 현실이 찾아오리라 상상했을까.

하투(夏鬪)는 한국 노사관계의 분수령이다. 특히 매년 5000여 개에 이르는 자동차업계 협력사는 완성차업계의 하투에 생사를 걸다시피 한다. 자동차 생산이 멈추는 순간 1~3차 생산업체의 기계도 멈추기 마련이다.

지난해 완성차업계는 임단협을 무분규로 타결하며 노사상생의 시작을 알렸다. 24년만에 처음 이룬 쾌거다. 올해 역시 쌍용차가 최단 기간 임단협을 마무리 지으며 초석을 다졌다. 때문에 유성기업에서 비롯된 자동차업계의 올스톱 위기는 더 큰 허탈감을 안기고 있다.

멈춘 건 공장만이 아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깨진 신뢰는 모처럼 달아오른 대ㆍ중소기업 상생(相生)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조짐이다. 5월, 유성기업의 긴박한 현장은 험난한 하투를 예고하는 전초전이 되고 있다.

24일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유성기업 현장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팽배했다. 공장 안 노조원은 공장 밖 경찰병력의 작은 구호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파업 6일째, 공장 안 한편에선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로 부산했고, 지친 표정의 노조원들은 삼삼오오 공장 곳곳에 앉아 있었다. 조리사가 없어 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사실상 사 측이 대화할 의지가 없다. 공권력 투입을 예상하고 있고, 물리적 충돌없이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건물에는 ‘하나된 투쟁 승리의 함성’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파업 전에 걸렸을 ‘마이머신 활동으로 고장 제로 달성하자’는 현수막이 보였다. 유성기업의 과거와 현실이다.

오전 8시를 넘기면서 공장에 들어가지 못한 비노조원이 속속 정문 앞 공터로 모였다. 경찰 병력도 늘어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성 기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상태다. 현재 현장에 배치한 15개 중대 외에 추가 투입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원ㆍ비노조원을 넘어 자동차업계, 노동계가 얽혀 있는 유성기업의 현실은 현장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23일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대표단 20여명이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때였다. 순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대표단 뒤로 파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를 지켜본 비노조원들 역시 뛰어가 ‘민주노총 몰아내고 우리 일터 사수하자’, ‘라인 중단되면 우리 일터 사라진다’ 등의 피켓으로 현수막을 가렸다. 대표단 뒤에 비조합원의 피켓, 그 뒤에 금속노조의 현수막이 내걸린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대표단은 전체 자동차 협력업체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성명서를 낭독했고, 그 뒤로 금속노조 측의 “민주노총 사수투쟁”이란 구호가 울려 퍼졌다. 구석 자리에 주저앉은 비조합원 김모 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작 공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공장 밖에서 다른 회사 대표를 만나고, 민노총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현실에 한숨밖에 안 나오네요.”

이기봉 아산공장장(전무)는 정문 인근을 서성이며 고성이 오가는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의 사태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루 3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건 향후 피해보상액과 떨어진 대외 신뢰도”라고 털어놨다. 그는 “사실상 노사 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불법적인 상황에선 교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현대기아차를 비롯 국내 완성차업계의 안정적인 납품계약이 밑거름이 됐다. 중소기업은 이를 토대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대기업은 안정적인 납품을 바탕으로 업계 성장을 이끄는, 대기업와 유성기업의 ‘선순환’은 사라졌다. 대신 부품 공급 중단과 차량 생산 중단, 납품 계약해지 등의 ‘악순환’이 자리잡았다. 파업 6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유성기업, 결국 대화는 사라지고 직원에, 업계에 깊은 상처만 남기게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자동차업계 하투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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