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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대한민국은 현재 ‘모럴 해저드 공화국’?
<김대우 사회부 전국팀장>

한동안 사라졌나 싶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란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우리사회 전 분야에서 모럴 해저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봇물터지듯 나오는 형국이다. 모 인터넷 검색포털에 모럴 해저드를 검색해보니 관련기사만 단박에 거의 1만 건 가량이나 뜬다. 내용도 가지가지여서 ‘모럴 해저드 백화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이 마치 ‘모럴 해저드 공화국’이라도 된 듯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아름다운 신록에도 불구하고 2011년 대한민국의 봄은 오점으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 본 모럴 해저드의 극치는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특혜인출 사건’이다. 이른바 신용을 먹고 산다는 금융회사인 부산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 전날 친인척과 VIP고객들에게 따로 연락해 수백억원의 예금을 특혜 인출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검찰’로 불리는금감원 직원은 아무런 조치없이 이를 묵인했다. 이 와중에 부산지역의 여야 의원들이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과 후순위채권 투자금 전액을 보상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특혜 인출자를 밝혀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예금자에 대한 보상을 하자고 하니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인지...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 역시 저축은행 못지않다. 

부산저축은행은 4조5000억대의 고객 돈을 빼돌렸고 부실을 감추려 2년 동안 2조4000억원대 회계분식과 자기자본비율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거짓 흑자를 내고서도 대주주와 경영진은 6년 동안 배당금 329억원과 연봉ㆍ상여금 191억원을 챙겼다. 금융감독 시스템도, 기업지배구조도 이들을 견제하는 데는 무용지물이었다. 금감원 출신 감사 4명은 오히려 불법과 비리에 적극 가담했다. 금감원 간부들의 금융기관 낙하산 감사 입성은 모럴해저드 논란과 함께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을 방불케할 정도다.

또 있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3%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어찌보면 가짜환자, 과잉수리비 등 모럴 해저드와 관련이 깊다. 자동차사고 입원율은 60.6%(2008년)로 일본(6.5%)의 9.5배에 달한다. 일본도 한때 입원율이 높았지만, 정부와 의료기관, 소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에 나서면서 그 비율이 떨어졌다. 운전자나 보험사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차를 정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견적시스템의 정착과 경상환자의 입원기준 마련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보험업계도 모럴 해저드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법률비용이나 전문지식면에서 우위에 있는 손보사들이 소비자에 대해 소송을 남발, 이를 민원 대응수단으로 악용하는가 하면 대형 생보사들은 당국의 시정권고에도 불구하고 2종 수술로 돼 있는 자궁소파수술을 1종 수술로 분류해 3년 동안 74억원의 보험금을 축소지급했다.

지난 3월4일 처벌조항 완화를 통해 사실상 입법로비를 허용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11분만에 기습적으로 처리한 국회의원들도 모럴 해저드의 주역들이다. 정치 후원금의 모금과 지출에서도 정치권이 기업과 단체가 정당을 후원할 수 있게 하고,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금 쪼개기’ 기부 관행을 합법화하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9월 유명환 전 장관 딸의 특채에 이어 상하이 외교관 스캔들,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오류 등의 대형 사건터진데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한 재외공관장이 상아를 대거 밀수하려다 관계 당국에 적발되는 등 모럴 해저드의 논란에 재차 휩싸였다.

지자체는 모럴 해저드의 결정판이다. 2010년 정부합동감사 결과를 보면, ‘제식구 감싸기’ 징계, 특혜채용, 예산낭비, 부당계약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지자체가 직접 설립해 경영하는 지방공기업은 지난해 부채 46조원은 2006년 말 22조원의 두 배가 넘고 연간 이자만 1조원이 넘지만 매년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관리공단, 농수산물공사 등 서울시 5개 공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가 15조8000억원에 달하는데도 직원들에게 모두 1257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경영부실과 영업손실 등을 반영하지 않고 경영개선도와 목표달성도를 평가해 성과급을 지급, 모럴 해저드를 부채질하는 현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식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한해운 부실기업들이 부도나 증시퇴출 직전에 유상증자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조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LIG건설, 삼부토건, 씨모텍, 대한해운 등은 최근 법정관리나 증시퇴출 직전에 유상증자를 통해 수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모럴해저드를 넘어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

기업구조조정 시장에서도 모럴해저드가 판을 치고 있다. 최근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채권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법정관리가 부실기업의 도피처로 악용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관리로 가면 채무동결규정에 따라 일체의 빚을 갚지 않아도 되고 처리기간도 패스트트랙 규정에 따라 6개월 안으로 단축되며, 횡령이나 배임 같은 위법이 확정되지 않는 한 경영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다.

심지어 결혼정보회사에서도 모럴 해저드가 이슈다. 상담시 무조건 회원가입만 받고, 가입하고 나면 소개를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전문직은 공짜로 가입시키고, 조건이 좋은 남성회원에게는 무료로 여성을 소개해주는 반면 골드미스에게는 회비를 많이 받고 소개를 제대로 안 해주는 회사들이 공격의 타깃이 되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는 이미 중증에 가깝다. 좋은 성과가 나오면 기업 대주주가 다 먹고, 손해가 나면 투자자와 국민이 책임지는 지금의 구조는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의 한 전형이다. 모럴 해저드를조장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은 물론, 사회지도층의 각성에서부터 국민들의 의식 전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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