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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귀비와 진시황의 슬픈 역사를 품고 화려하게 꽃피다…중국 시안
황사의 발원지인 네이멍구 자치구에 남(南)으로 면한 이곳의 공기는 사시사철 희부옇다. 중국 중서부 내륙에 든 산시성(陝西省)의 성도 시안(西安).

주(周)에 성립돼 한(漢)을 거쳐 당(唐)에 이르기까지 1000여년간, 이곳은 장안(長安)이었다. 자연재해가 없고 농사가 잘되는 관중 평원이 들어앉은 분지의 가운데. 천혜의 요새이자 오래된 수도인 이 일대에 현재 남은 황제의 무덤만 72개에 이른다. 아열대의 남방과 온대의 북방을 가르는 진령산맥 바로 위에 있어 4월 초지만 초여름 같았다. 연평균 강수량이 600㎜에 그치는 이곳 공기는 시종 건조한 바람을 날렸다.

▶거울 같은 못에 잠긴 끝없는 슬픔의 노래…화칭츠(華淸池)=버스를 타고 시안 시 동쪽 교외로 달려 화칭츠(華淸池)에 닿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 중 하나인,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杨贵妃)의 러브스토리가 잠든 곳. 양질의 온천수가 나오는 이곳은 서주(西周) 말기에 작은 궁이 들어섰는데 당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증축해 화칭궁(华清宫)이라 칭했다. 빼어난 미모와 달리 암내에 시달렸던 양귀비는 이곳에서 하루에 여섯 번 이상 목욕하며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여러 개의 욕실이 전각 형태로 모여있다. 해당탕(海棠湯)은 이례적으로 탕 바닥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두 개다. 양귀비와 현종이 함께 들어 노닐었던 때문이다. 이밖에 현종 홀로 들었다는 연화탕(莲花湯), 양귀비가 목욕 후 올라가 머리를 말렸다는 양발전(陽髮殿) 등이 고스란히 남아 근 1300년 전의 이야기를 짐작케 해준다. 전각들이 마주 본 마당에는 목욕물에 드는 반라의 양귀비 상(像)이 있다. 양귀비의 백옥 같은 피부를 유지해준 온천수를 직접 손으로 느껴볼 수 있는 수도도 설치돼 있다. 마치 붓으로 그려넣은 듯 화칭츠를 병풍으로 받친 뒷산, 리산(驪山) 기슭에는 1936년 장제스(蔣介石)가 은신했다 끝내 체포됐던 굴도 올려다보인다. 양귀비의 마지막은 장제스의 그것보다 비참해 사랑의 비극을 완성했다. 안사의 난으로 피신 중이던 양귀비는 불만이 차오른 호위 무사들의 손에 죽었는데, 현종은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여생을 사무치는 비탄과 그리움에 통째로 헌납했다.

화칭츠와 뒷산은 밤이 되면 거대한 자연의 세트장으로 변한다. 둘의 비극적 사랑을 장대한 시로 승화시킨 당대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ㆍ끝없는 슬픔의 노래)가 장이머우의 손을 거쳐 화려한 쇼로 거듭나 이곳에서 펼쳐진다.

지난 1일은 ‘2011 장한가’의 시즌 개막일이었다. 해가 저물도록 비가 수면 위를 두드렸다. 평상시라면 공연을 철회할 날씨였지만 마수걸이를 망칠 수 없다는 주최 측 철학에 따라 강행됐다. 밤의 장막 사이로 수면에 뜬 사각형 무대와 배경의 전각, 원경의 뒷산이 조명에 물들면 양귀비의 영혼이 와이어에 매달려 지상에 내려온다. 현종과 그녀의 격정적인 사랑은 현란한 무용으로 표현된다.

일순간 암전. 리산의 어둠이 촘촘한 별 밭이 되고 인공의 초승달이 능선 위로 떠오르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못 옆에 선 누각이 불꽃을 쏟아내며 포화를 연상시키는 전쟁 장면도 눈길을 잡는다.
▶진시황릉 병마용의 아기자기한 진화, 한양릉(漢陽陵)=전한(前漢) 제4대 황제 경제(景帝)의 무덤인 한양릉(漢陽陵)은 진시황의 병마용과 비교해 볼 만한 좋은 볼거리를 갖고 있다. 이곳 순장갱((殉葬坑)은 실제 크기의 3분의 1~4분의 1로 축소된 ‘미니어처’ 병마용들이 대거 발견된 곳. 지난 2003년 한양릉 박물관으로 개소했다. 지하 갱위 일부에 유리 천장을 붙여 관람객들이 발 아래로 갱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한 것이 특징.

한(漢)대에 오면, 혹독한 세금과 징용으로 파탄났던 진(秦)을 본보기 삼아 병마용의 크기와 개수를 대폭 줄여 이처럼 작은 죽음의 왕국을 만들었다. 소, 돼지, 양, 개 등 가축의 용(俑ㆍ인형)은 저마다 배가 불룩하다. ‘저승에 가면 열 마리가 될 것’이라며 전부 임신한 모습으로 넣은 당대 사람들의 재치가 엿보인다.

시안시내에 있는 산시성 역사박물관도 필수 코스다. 선사시대 석기부터 연대별로 주, 진, 한, 위진남북조, 수, 당, 송,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100여만년의 역사가 37만여점의 소장 유물에 빼곡히 담겨 중국 역사를 일별케 한다.

시안 도심을 감싸는 둘레 13.7㎞의 장안성은 오롯이 보존돼 도시 자체를 거대한 문화재로 만든다. 도심 내는 서울과 비슷하다. 고루(鼓樓) 주변에는 회민 거리의 고풍스러운 야시장도 있지만, 혈기 넘치는 밴드가 스팅과 제이슨 므라즈를 연주하는 올드 헨리스 바(Old Henry’s Bar) 같은 핫플레이스도 공생한다.

<중국 시안=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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