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응대 직원 한 명
입금하는데 무려 40분
경쟁 통한 서비스 개선
은행-정부 줄다리기 주목
코트라 직원이 현지에 부임하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 코리아비즈니스센터(KBC)의 거래 은행이다. 최근 필자도 시드니KBC에 부임한 뒤 거래 은행을 찾았다. 데스크에 앉아 방문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은 한 명뿐이고, 여수신업무 담당 은행원은 투명한 유리벽 너머 조그만 구멍을 통해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 수표 한 장을 입금하는 데 무려 40분이 걸렸다.
영국 런던KBC에서 근무할 당시의 은행보다 구멍이 조금 넓을 뿐 불친절한 서비스는 비슷하다. 일본 도쿄KBC에서 근무할 때는 센터장이 새로 부임하자 은행 담당자가 직접 KBC를 방문해 권한 위임 등 필요한 작업과 안내 서류를 제공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런 극진한 대우는 아니더라도 시드니KBC가 지난 40여년간 해당 은행과 거래한 장기 고객임을 감안하면 지금 막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온 고객과 다를 바 없는 대접을 하는 호주의 은행은 서운함을 들게 할 정도다.
지난해 외환은행 인수 건으로 한국 언론에도 자주 언급된 호주뉴질랜드은행(ANZ)과 맥쿼리그룹이 대표적인 호주 기업이다. 호주는 서비스업, 특히 금융업이 많이 발달한 나라이기에 이러한 서비스 현실은 더 의아스럽다.
호주 TV에는 “우리는 일반 은행처럼 불친절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등의 광고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은행들의 서비스 현주소를 반증한다.
은행 서비스 품질은 최근 더 부각되고 있는 문제다. 사업자금을 외부 투자자로부터 조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불친절해진 은행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호주 은행은 전 세계 금융권의 선망의 대상이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휘청거리고 있는 반면 호주 은행은 지급 가능한 은행, 수익성 있는 은행이기 때문이다. 호주 은행이 이런 위치에 올라서게 된 데는 오래전부터 부동산에 관심을 둔 덕이 크다. 호주 부동산 시장이 지난 10년간 강세를 보인 탓에 주요 은행들은 비즈니스가 아닌 부동산에 집중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호주 중소기업 A사는 사업 확장을 위한 신규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으나 종래에 적용된 이자율 8.19%를 그대로 적용받아야 했다. 비즈니스 성과보다는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관행 때문에 사업 확장이 신용 등급에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호주 4대 은행인 CBA, Westpac, ANZ, NAB 간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것도 서비스 품질이 나아지지 않는 배경이다. 호주 정부는 대형 은행의 횡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며, 조금씩 은행 간 경쟁 환경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대형 은행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고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선 은행 간 경쟁 유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선의 방법은 대형 은행을 중소형 은행으로 쪼개어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대형 은행의 횡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규모의 경제 논리를 들어 반박하는 은행도 있다. 현재 호주는 기득권을 쥐려는 은행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객과 정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