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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리포트> “칼퇴근이 뭔가요?”…인턴도 야근하는 시대
[헤럴드경제=영리포트팀]최근 케이블 TV드라마 ‘미생’이 시청률 6%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막장’ 스토리도 없고 선명한 갈등 구조도 없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실감 있는 직장인 이야기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공감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증거다.

드라마 속 야근을 당연시하는 상사 때문에 속 끓는 부하직원, 한 달 넘는 연속 근무로 병원에 못 가서 병을 키우는 회사원, 육아와 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워킹맘은 곧 나의 얘기이고 우리 이웃의 얘기다. 야근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의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모아봤다.

▶“야근수당은 먹는 건가요?”=국내 최대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모(27ㆍ여)씨. 그에게 ‘공식적’으로 야근은 없다. 회사에서 야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야근수당은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입사 후 제 시간에 퇴근해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매일 같이 저녁은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해결하고 다같이 사무실로 다시 들어와 업무를 하는 것이 일상이다.

바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동료들 모두 투덜대면서도 칼퇴근하는 사람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지만 다시 험난의 백수의 길을 가고 싶진 않다. 결국 그는 생각을 바꿨다. 스스로 “나는 행복하다” “일이 재미있다”고 자기암시를 건다.

학창시절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시절을 떠올리고 제작한 광고가 호평을 받을 때의 짜릿함을 기억해낸다. 김씨는 “힘들게 일한만큼 커리어(경력)가 쌓이고 내가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면서 “가끔은 내가 내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빨리 딴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야근은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다. 밀린 일 때문에,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퇴근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는 상사 때문에, 회사 분위기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지만 떳떳하게 야근수당을 신청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늦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여의도 증권가의 사무실 모습이 오늘날 기업 야근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누구를 위한 ‘야근 상한제’=국내 대기업 A사는 몇 년 전 야근 상한제를 도입했다. A사 직원들의 근무 시간이 길어 지나치게 혹사당한다는 판단과 함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이에 따라 A사 경영지원실은 주당 52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아예 금지했다.

만약 직원들이 주당 52시간 이상을 초과해 야근 근무를 하면 소속 부서장에게 경고 메시지가 발송된다. 회사 측은 경고 메시지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이를 악용하는 상사도 있다. 같은 회사 재무팀에서 근무하는 박모 과장은 어느날 팀장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당분간 가급적 야근 수당 신청을 하지 말라는 것. 이 회사는 사내 인트라넷으로 자신의 야근 시간을 입력하면 팀장 결재 아래 자동으로 계좌에 야근수당이 입금된다.

팀장은 팀원들이 야근을 너무 많이 하면 자신의 승진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야근은 하되 수당은 신청하지 말라고 못박았다. 박 과장은 “인사팀에 정식으로 항의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팀장 귀에 들어갈 것 같아 꾹 참고 있다”고 말했다.

야근하는 여의도.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날마다 사표 쓰는 나는 ‘워킹맘’=5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진모(38)씨. 그는 일주일에 최소 이틀은 야근을 한다. 야근을 할 때마다 남편과 다투게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는데, 남편도 야근이 운명인 같은 샐러리맨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내가 너무 사랑만 보고 결혼했나 싶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잡힌 회의나 비상사태가 터지면 머릿 속은 암흑 상태가 된다. 퇴근 때까지 어린이집에 있을 아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씨는 “자정이 돼 들어가도 현관문 소리만 나면 아들이 기가 막히게 깨서 달려나온다”면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종일 초긴장 상태다. 모든 관심이 아이한테 쏠려 있다보니 일이 손에 집힐리가 없다. 진씨는 “가지 말라고 우는 아들을 놓고 아침에 출근할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되나’ 생각이 든다”면서 “’워킹맘은 가슴에 사표를 넣고 다닌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된다”고 했다.

항상 함께해주지 못한 탓에 진씨의 주말은 또다른 근무시간이다. 평일에 많이 못 보는 아들은 주말만 되면 진씨의 껌딱지가 된다. 안피우던 어리광도 최고치에 오른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때는 진씨도 사람인지라 모든 역할을 놔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결혼 후 승진 욕심은 버린지 오래다. 그는 요즘 창 밖을 보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란 생각에 멍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당 백해야 살아남은 인턴女=서울 강남의 한 물류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이모(25ㆍ여) 씨는 벌써 한달 째 ‘야근 릴레이’를 하고 있다. 오전 8시30분까지 출근해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회사를 떠난다. 인턴사원이라 야근 수당은 없다. 졸업 후 2년 여의 공백 끝에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입사했다는 이씨는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지만 때론 백수시절이 그립기도 하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1시가 넘어 퇴근한 날은 일어나기에 급급해 아침에 머리조차 감지 못하고 출근한다. 최근에는 4일 넘게 ‘드라이 샴푸 스프레이’로 머리를 감았다. 분말가루를 뿌려 가닥가닥 갈라지는 머리카락만 겨우 수습했다.

이씨는 “매일 같이 12시간 넘게 화장을 지우지 못해 나를 비롯한 여자 동기들이 얼굴에 뾰루지를 달고 산다”면서 “몇몇 동기들은 아예 세안용품을 갖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입사 한 달동안 는 건 ‘잔머리’다. 1시간이라도 빨리 퇴근하기 위해 저녁식사는 굶거나 간단히 해결한다. 이씨는 “혼자 식사해야 할 때면 근처 카페에서 잔업을 끝낸다”면서 “다이어트와 업무 처리,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이어 “요즘엔 일부러 ‘같이 밥을 먹자’고 한 뒤 함께 일하는 동기들도 생겼다”고 했다.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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