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 A씨가 지난해 12월 살인 혐의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저항하던 피해자는 결국 ‘오빠 미안해’라고 합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고인을 달래보려는 말입니다. ‘오빠 미안해, 잘못했어’라는 말을 내뱉기까지 피해자가 당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는 2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유명 로펌 소속 미국변호사 A씨(51)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가해진 고통의 정도가 일반적인 사망의 통상적인 수준을 넘기 때문에 가중처벌”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검찰은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별거 중이던 아내가 집에 찾아오자 쇠파이프로 수차례 가격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상해치사를 주장했다. 아내가 먼저 고양이와 자신을 공격해 대응하는 과정에서 목을 눌러 제압하고 때렸을뿐, 살해 고의는 없었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A씨측은 아내가 고양이를 발로 밀치고 A씨가 고양이와 놀아주느라 쥐고 있던 고양이 장난감(쇠파이프)를 빼앗아 자신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A씨의 얼굴을 때려 안경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A씨의 낭심을 붙잡아 격분했다고도 했다. 사고 발생 당시 유발 요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면 감경 요인이 된다는 점을 노린 주장이다. 다만 A씨는 사망 당시 현장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이 증거로 제출되자 6차 공판기일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주장을 변경했다.
1심 재판부에 이에 대해 “제출된 녹음파일을 재판부가 수차례 들었으나 (피고인이 주장하는)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A씨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어 “적어도 고양이 소리, 안경이 떨어지는 소리, (피고인이) 괴로워하는 소리, 피해자가 피고인을 가격하려는 소리가 들려야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쇠파이프에서 피해자 지문이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기관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범행 직후) 의식도 있고 숨도 쉬고 있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범행 직후 아들에게 달려가 자기변명을 했다”며 “119에 신고하지 않고 상당기간 방치했다. 피해자를 살리려는 구호 노력을 하지 않아 피해자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일말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막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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