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대세였다. 대선이 가까이 올때까지 2위였던 노무현 전 민주당 후보에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줄곧 우세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2년 6월 여중생 2명이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당시 한일월드컵으로 광장과 익숙해있던 시민들은, 반미 시위를 하기 위해 이번에는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보수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에겐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야권 후보였던 정몽준 후보의 노무현 후보의 지지철회도 결국에는악재로 작용했다는 풀이가 많다. 당시 정몽준 후보는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뒤, 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전날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 후보의 지지철회로 노 후보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어 투표장에 나올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투표장으로 끌어들였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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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대선때도 돌발변수가 있었다. 1992년 12월 15일. 대선을 사흘 앞둔 상황이다.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이 폭로된 것이다. 당시 정주영 국민당 후보 측의 김동길 선대위원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퇴임 후 부산 지역 주요 기관장들과 만나 김영삼 민자당 후보 지원을 논의한 현장의 대화를 담았다”며 녹음 테이프를 공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선이 한달도 남지 않은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858기가 김현희. 김승일 등 북한 공작원에 의해 폭파된 것이다. 이 사고로 탑승자 115명이 전원 사망한다. 김영삼, 김대중 후보로 분열된 야권으로서는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안보와 관련된 이슈는 분명히 악재였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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