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정권 유사사례 들어 ‘방어막’
박근혜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초기부터 줄곧 과거 정권 사례를 ‘방패막이’로 삼아 빈축을 사고 있다.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전날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답변서에서 “참사 당일 대통령이 머문 관저 집무실도 정상적인 업무공간”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그 근거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 사례를 들었다. 앞서 국회 측 대리인 이명웅 변호사는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 집무실이다. 관저 집무실의 법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대통령 측에 요구한 바 있다.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령과 질병으로 평소 관저에서 집무할 때가 많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오전 10시 이전 회의나 저녁 회의, 휴일 업무를 대부분 관저에서 봤다”고 주장했다.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김선일 씨 피살사건 때 노 전 대통령이 관저에서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고, 평소 지인을 관저로 불러 만난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씨가 “일요일에 가끔 관저에서 대통령과 식사한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돼 야당은 일제히 비판적인 논평을 냈다. 해당 기사는 이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정파성이 담긴 특정 정당의 주장을 박 대통령 측은 탄핵의 방어논리로 그대로 인용한 셈이다. ‘관저정치’로 비난받은 전직 대통령 사례를 되레 박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관저 근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해 허술함도 지적된다.
박 대통령 측의 이러한 ‘노무현 끌어들이기’는 지난달 16일 헌재에 제출한 첫 답변서에서부터 시작됐다.
박 대통령 측은 “노무현 정부 때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취임한 직후 1급 공무원 11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국회 측 논리라면 노 대통령도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 입맛대로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를 단행하고,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노태강 체육국장을 좌천시켰다는 국회 측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어 “조직 쇄신 차원에서 1급 공무원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사례는 역대 정부에도 다수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또 탄핵사유 중 하나인 대통령의 뇌물죄를 방어하기 위해 노무현ㆍ이명박 정부 때 설립된 삼성꿈장학재단과 서민금융진흥원을 비슷한 예로 제시했다. 대리인단을 이끄는 이중환 변호사는 줄곧 “역대 정권은 모두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출연을 받아 재단을 설립했다”며 “미르ㆍK스포츠 재단 모금이 뇌물이라면 전직 대통령도 다 뇌물죄로 처벌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과거 정부 사례를 인용하는 박 대통령 측의 방어 논리에 아직 헌재가 이렇다할 의견을 내놓은 적은 없다. 헌재는 전날 박 대통령 측이 신청한 삼성꿈장학재단과 서민금융진흥원에 대한 사실조회를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때문에 앞으로 박 대통령 측이 뇌물수수 혐의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과거 정부 사례로 물타기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