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2년차 사원 조 모 씨(27, 서울 송파구). 그는 업무가 끝난 뒤 회사 동료들과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승진을 위해 영어학원을 다니고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과는 달리 여가활동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빠른 승진을 통해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될 경우 퇴사 역시 빨라져 훗날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그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보다는 비록 사회적인 성취는 적지만 마음이 편안한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최근 이처럼 승진을 통해 임원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여가를 즐기며 자기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왜 출세의 상징인 ‘별'(임원)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까.
이들이 승진을 포기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바로 임원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하면서도 큰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담당하며 정년까지 ‘길고 가늘게’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려는 것. 한 전직 임원은 “임원은 높은 연봉을 받고 차량 제공 및 개인 공간 배정 등의 혜택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사실상 계약직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이며 단 한번의 실수로도 큰 책임을 져야하기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요인과 함께 경제적인 요인 역시 승진을 포기하는 큰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2~3년 정도 임원을 하고 물러나는 것보다 부장으로 정년을 채우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금융 관련 단체의 경우, 일부 부장들이 임원을 달지 않기 위해 줄을 대는 사례도 있었다. ‘역(逆) 인사 민원이다. 임원을 달 경우 정권 교체기마다 자리가 위태로와 지는 데다, 각종 수당 등이 줄어 임금 역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사원이나 대리급의 승진 포기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조 씨는 “임원 승진이란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삶의 여유 대부분을 포기하기보다 순간순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승진포기자가 많을수록 일선 기업들은 생산성 저하라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4년간 연봉이 30% 넘게 증가했지만 1인당 생산성은 10%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체 인력의 20%에 해당되는 승진포기자 문제가 해결되면 순익이 10% 가까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섯불리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자칫 노조와 첨예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생산직 중 ‘만년 대리’에 머무는 사람 중에는 관리직 이하 직급에게만 유지되는 조합원 신분을 위해 승진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들과의 갈등을 피하면서 생산 효율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