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국영 TV 방송국인 도어다르샨 서벵골 지부의 앵커 로파무드라 신하는 지난 18일 폭염 관련 뉴스를 보도하던 중 기절했다.[로파무드라 신하 페이스북 캡처]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아직 4월이 채 가지않았는데 더운 날씨입니다. 주말 동안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은 곳도 있었죠.
때이른 더위가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동·서남아시아 각국이 벌써부터 살인적인 폭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최근 닷새 동안 최소 34명이 열사병 증상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지난 18일에는 인도 국영 방송국 지부의 여성 앵커가 폭염 뉴스를 전하던 중 정신을 잃었습니다.
‘펄펄 끓는 지구’라는 표현이 익숙한 요즘,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탄소 감축 대책이 불충분하다며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 변론을 진행했습니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 소송입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재판은 5시간이 지난 7시께 종료됐습니다. 9명의 헌법재판관은 소송 청구인과 이해관계인(정부)측에 80개가 넘는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열띤 현장을 다시 떠올려보겠습니다.
지난 23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비롯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기후소송 첫 헌법재판 공개변론에 앞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청구인 측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은 크게 2가지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과 동법 시행령, 지난 2023년 수립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입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측과 정부측 모두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감축 목표, 감축 경로, 연도별 이행 계획 등 세부적인 내용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논점은 결국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가 가져야 하는 책임의 수준(청구인)과 경제 구조를 감안한 현실적인 정책(정부)이었습니다.
양측은 감축 목표를 두고 가장 먼저 대립했습니다. 탄소중립법 시행령은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라고 합니다.
청구인 측은 40%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IPCC 제6차 종합보고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기 때문이죠. ‘글로벌 기준’인 43%에 미달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정부 측은 한국 경제 구조를 고려한 실현 가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0% 감축 목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한 최대 감축이라는 주장입니다.
파리 협정은 국가별 배출 감축량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40%라는 감축 목표를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 자체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청구인측은 정부 의지만 있다면 구체적인 감축량을 설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독일 사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 환경자문위원회의 분석에 따라 67억톤을 탄소예산으로 제시했습니다(2020년 기준). 탄소예산은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는 범위 안에서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의 양을 말합니다. IPCC의 보고서에 제시된 글로벌 탄소예산을 전세계 인구 중 독일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나눈 값입니다. 국가별로 ‘탄소 예산’을 구체화한 몇 없는 사례입니다.
감축 경로에 따른 탄소 누적배출량 비교. 빨간 선은 정부의 제1차 탄소중립 기본계획 그래프. 기본계획은 2028~2030년에 급격한 감축을 목표로 하는 볼록한 형태다. 청구인측은 2023~2025년 빠르게 많이 감축한 뒤 점차 감축 부담을 줄이는 오목한 형태의 감축 경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 제공] |
두번째 대립은 감축 경로를 두고 벌어졌습니다. 청구인측은 현재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지금 당장’ 빠르게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발전 분야에서 태양광, 해상풍력 등 청정에너지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정부측은 정책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미래에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등 신기술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2030년이 가까워질수록 더 급격한 감축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양측이 신청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청구인측 참고인으로는 대한민국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인 조천호 전 원장이 참석했습니다. 정부측 참고인으로는 현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인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가 참석했습니다.
국내 첫 기후소송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종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이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착석해있다. 연합뉴스 |
세번째 쟁점은 연도별 목표치 설정 여부였습니다. 제1차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연도별 탄소 배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2024년 6억 2510만톤 ▷2025년 6억 1760만톤 ▷2026년 6억 290만톤 등 배출 가능한 최대치를 정해뒀죠. 하지만 2031년부터는 목표치가 없습니다. 청구인측은 2031년 이후 감축 목표량을 설정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쟁점에서도 독일 사례가 소환됩니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기후보호법이 2030년 이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미리 계획을 정해야 단계적·안정적인 감축이 가능하고,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할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정부측은 기본계획에 2030년 이후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 5년마다 UN에 NDC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헌재는 NDC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부측은 청구인측이 들었던 2016년 사례에 대해서도 반박했습니다. 2010년 목표를 설정할 때는 국제적으로 목표치를 설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정부가 목표를 설정했고, 이에 따라 성과도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국내 첫 기후소송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종석 헌재소장이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이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착석해있다. [연합] |
마지막 질문자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었습니다. 제조업 분야의 탄소 감축 목표를 높이는 것이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안 교수는 “단기적으로 일부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는 있다”면서도 “국제적으로 경제 질서 자체가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도록 바뀌고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답했습니다.
5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재판은 많은 궁금증을 남기고 마무리 됐습니다. 즉각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기후위기와 관련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오는 5월 21일 또다른 참고인들과 함께 2차 공개변론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