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진호 선장, 마지막까지 조타실서 구조요청… 끝내 숨져
전방위적 구조작업 병행…해군 함정과 공군 헬기 2대 등 투입
지난 2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해상에서 통영 선적 근해 장어 연승어선 창진호(24t·승선원 14명)가 전복, 해경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지난 25일 제주 서귀포시 인근에서 발생한 창진호 전복 사고엔 세월호 참사와 다른 점이 있었다. 선장은 마지막까지 구조요청을 하며 배를 지켰고, 배에 비치돼 있던 구명벌도 펴져 침몰 지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또 해경 함정과 공군 헬기 투입 등 전방위에 걸쳐 구조작업이 이뤄져 거센 파도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선원이 구조될 수 있었다.
하문기 통영근해연승어업협회 협회장은 26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1년에 한번씩 여러날에 걸쳐 선박에 대한 세밀한 검열이 이뤄진다”며 “그걸 통과해야 운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 협회장은 이번 창진호 사고 때 구명벌(무동력 고무보트)이 펴진 것도 당국의 검열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날 창진호가 침몰한 이후 펴진 구명벌은 창진호 침몰 지점의 부표역할을 했다. 구조당국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을 때엔 배는 이미 완전 침몰 이후여서 정확한 사고지점 파악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명벌 덕분에 ‘골든타임’ 내에 선원 다수를 구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구명벌은 비상탈출에 대비해 어선에 탑재한 둥근 모양의 구조용 보트로, 물에 가라앉더라도 일정한 수압이 되면 수압분리계가 작동해 자동으로 펴진다. 창진호 선원들은 침몰 후 펼쳐진 구명정에 올라타 무사히 구조됐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구명벌이 자동으로 부풀어오지 않아 문제가 됐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선박에 대한 검사가 엄격해진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사고에 대처하는 선장의 행보도 달랐다. 창진호 선장은 끝까지 배에 남아 구조요청을 발신했다. 지난 25일 오전 6시경 조업 중이던 장어잡이배 창진호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창진호 선장 황모(61·통영시) 씨는 제일 먼저 선원들을 대피시켰다. 그는 곧바로 “배가 침수하고 있다”며 해양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다. 생존 선원인 창진호 기관장 이모(39·통영시) 씨는 황 씨가 마지막까지 조타실에 남아 무선 교신을 통해 “배가 기울어졌다”며 구조신호를 보냈다고 기억했다. 안타깝게도 선장 황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고 심폐소생술이 실시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이에 비해 세월호 선장은 사고 직후 가장먼저 대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주변 어선이 구조작업에 나서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군의 전방위 지원도 구조를 도왔다. 이날 해경은 5000t급 함정 1대와 3000t급 함정 1대를 급파했다. 해경 헬기 1대도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 공군 헬기 2대는 이날 오전 7시 50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해 탐색 구조를 지원했다. 공군 관계자는 “바람 거센 상황에서는 헬기가 수색에 유리하기 때문에 바로 출동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선장과 선원 14명이 탄 창진호가 새벽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63㎞ 해상에서 큰 파도를 맞아 전복됐다. 사고 후 창진호 승선원 14명 중 13명이 구조됐지만 이중 3명은 끝내 숨졌다. 나머지 1명은 실종돼 현재 수색 중이다. 사고 당일 실종자를 찾기 위한 밤샘 수색이 계속됐지만 아직까지 추가 발견자는 없는 상황이다.
jakme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