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라는 신흥국 담요 사라졌다”
[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 미국이 기준금리를 2%대로 끌어올리며 금리인상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가운데, 유럽도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신흥국 위기설’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무역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필두로 한 유로존의 분열도 글로벌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4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경기 부진을 고려해 당분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했으나 오는 10월 이후 자산 매입을 끝내겠다고 밝히며 돈 줄 조이기에 나섰다. ECB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로존 경기가 침체에 빠지기 시작하자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2015년 3월부터 매달 600억 유로 규모의 자산 매입을 하면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올해 초부터는 자산매입 규모를 월 300억 유로로 줄인 대신 자산매입 기간을 지난해 말에서 올해 9월까지로 연장했다 10월부터 12월까지 자산매입 규모를 월 150억 유로로 더 줄인 뒤 연말엔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하기로 했다. 앞서 전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기존 1.50~1.75%에서 1.75~2.0%로 0.25%포인트 올리고 향후 2년 내 총 6차례의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데 따른 대응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4일(현지시간)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10월부터 12월까지 자산매입 규모를 월 150억 유로로 줄인 뒤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미국에 이어 긴축 계획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경제가 ‘긴축 모드’에 돌입하면서 ‘6월 위기설’에 싸인 신흥국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전략가는 “양적완화라는 신흥국의 ‘안정감 담요’는 사라졌다”고 해석했다.
신흥국 위기설을 촉발시킨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은 통화 가치가 급락한 상황에서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대규모 자금 유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연초 대비 아르헨티나 페소화 38%, 터키 리라화 21%, 브라질 헤알화 12%, 인도 루피화가 6%가량 급락했다.
신흥국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는 자본유출과 페소화 가치 급락을 방어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3년간 500억 달러(53조4750억 원)를 지원받기로 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환율 방어를 위해 정책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그러나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발표되자 당장 신흥국 증시는 휘청거렸다. 아르헨티나의 페소화와 터키 리라화도 추가 하락세를 보였다. 향후 2013년의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이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의 제이슨 도 애널리스트는 로이터 통신에 “각종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신흥시장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신흥시장의 약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신흥국 통화 위기가 1997년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를 연상하게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 총재는 연준에 대해 “어떤 조치가 다른 나라, 특히 신흥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만 한다”며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 기조가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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