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짓는데”...배타적 사업구조
일반분양가 높여서라도 ‘더 비싸게’
아파트값 상승자극 지적에도 아랑곳
조합-건설사간 ‘검은 거래’ 의혹도
단속 공무원, “몰랐다” “그럴수도”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다른 조합은 다 들여보내주는데, 왜 미성ㆍ크로바만 안 들여보내줘요?”
“수주전이 뜨거워 롯데랑 GS 감정이 좋지 않아요. 무슨 일 생길까봐 총회장엔 조합원만 입장시키고 있습니다. 기자도 못 들어가요.”
서울 송파구 미성ㆍ크로바 아파트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린 11일 저녁, 송파구 교통회관 주변은 험악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검은 양복 차림의 덩치 큰 사내들이 곳곳에 배치돼 주변을 감시하듯 서성였다. 입구에는 롯데건설과 GS건설 측 직원들이 마주서 길을 낸 모양으로 도열해 있었다. 조합원이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롯데 2번” “GS 확정” 구호를 외쳤다. 양측이 서로 눈알을 부라리며 다툼을 벌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사진설명=지난 11일 미성ㆍ크로바 재건축 조합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린 송파구 교통회관 앞. 시공권 선정을 두고 경쟁을 벌인 롯데건설과 GS건설 측이 깃발을 들고 유세를 하고 있다.] |
총회장이 있는 2층 계단에 올라서려 하자 경호원이 조합원만 들어갈 수 있다며 막아섰다. 다른 출입구의 계단들도 모두 경호원이 막고 있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다 요행히 화물 엘레베이터를 잡아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선 조합이 조합원들의 신분증 등을 일일이 검사한 뒤 파란색 신분 확인 스티커를 붙여줬다. 흰색 스티커를 붙이고 서 있는 참관인과 공공관리자도 보였다.
‘신분 확인을 어떻게 뚫어야 하나’ 고민하며 서 있는데 옆에 선 한 무리의 조합원들이 “○○건설이 조합원 별로 골라가며 500만원, 1000만원씩 뿌렸다던데” 는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확인은 안된 내용이지만, 이런 소문은 이미 여러 차례 돌아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조합과 송파구청 측은 모두 “수사 기관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저녁 7시가 다가오자 총회장 입장이 시작됐다. 1300명 넘는 조합원이 물밀듯 입장했다. 많은 수가 들어가는 틈을 타 입장을 시도했다.
“잠깐만요. 비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진행요원이 가로막고 섰다. 신분을 솔직히 털어놓고 명함을 건넸다. 의외로 진행요원은 참관인 스티커를 붙여주며 입장을 허가했다.
총회가 시작되자 먼저 GS의 홍보영상이 상영됐다. 주로 롯데 측이 제시한 입찰 조건이 거짓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영상이 끝나자 일부 조합원이 박수를 쳤다.
이어 롯데의 영상이 상영됐다. 롯데는 양측의 입찰 조건을 비교하며 “조합원 당 7억4000만원의 개발이익을 GS보다 더 주겠다”고 피력했다. 영상 후에는 GS 때보다 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우열이 확연했다.
이어 각 건설사 담당자들이 질의응답에 들어갔다. 조합장은 양측에 ‘대안 설계’(조합이 제시한 ‘원안 설계’ 대신 건설사가 제시한 설계)로 인해 공사비가 얼마가 더 드는지, 조합원 부담금이 늘어나는지 질문을 던졌다.
GS측은 공사비 760여억 원 더 들지만, 일반분양가를 높이면 조합원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의 옆에 앉은 한 조합원은 “일반분양가를 최대한 높여주는 거야 원래 해주기로 했던 거니까, 그걸로 추가 공사비를 충당하겠다는 말은 결국 조합원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 아니냐”고 불평했다.
롯데 측은 “기존에 이사비 혹은 초과이익환수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던 569억원을 대안 설계 공사비로 쓰면, 조합원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안 설계 시 추가 공사비가 정확히 얼마가 더 드는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장황하게 꼬아 설명하고 있다며 몇몇 조합원들이 항의했다.
일부에서는 “배고프다” “빨리 끝내라”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사진설명=미성ㆍ크로바 재건축 조합은 지난 11일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어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
대안 설계는 시공사 선정의 핵심 쟁점이다. 조합원 부담금이 수천만원 이상 늘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재건축 사업이 추가 공사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이에 조합은 당초 입찰 지침에서 대안 설계 제시를 막았다. 그럼에도 두 회사 모두 대안 설계를 제시했다. 공정한 경쟁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는 위반 사항이다. 조합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조합원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조합장이 답했다.
“두 업체 모두 지침을 위반했다. 둘 다 입찰 자격 박탈해야 하나? 그러면 어떻게 되나?”
큰 박수가 조합장에 쏟아졌다.
자신이 생긴듯 조합장은 방문홍보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두 업체 모두 홍보할 거 다 했다. 통제하려 했는데, 여러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달랑 두 개 업체만 참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입찰 업체는 개별 및 방문 홍보를 할 수 없다. 서울시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기준’ 등에 따라, 조합은 개별 및 방문 홍보를 하면 입찰 자격을 박탈한다고 명시했다. 박탈권을 쓰게 되면 사업 자체의 진행이 불가능해지는 딜레마가 생긴다.
조합원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뒤이어 5000만원 어치의 경품 추첨행사가 벌어졌다.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등이 뿌려졌다. 롯데와 GS로 갈려 언성이 높았던 총회장은 이내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정비사업 공공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재건축의 투명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다. 미성ㆍ크로바를 담당하는 공공관리자는 송파구청장이다. ‘서울시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기준’에는 “공공관리자는 조합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시공자를 선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처분의 취소, 변경 또는 정지, 임원의 개선 권고 등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총회에는 송파구청 공무원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날 일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답변은 엉뚱했다.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두 개 업체만 참여했기 때문에 조합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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